경제·금융

[돈 넘쳐나도 굴릴곳이 없다] 돈흐름 기형화 ‘자금시장 갈팡질팡’

국내외 정치ㆍ경제상황이 `전쟁`과 `개혁`등 불안한 변수들이 늘어나면서 시중자금은 넘쳐나는데 적재적소로 공급되지 않은 채 헛바퀴만 돌고 있다. 당연히 경제가 잘 돌아갈리가 없다. 각종 수출이나 산업생산은 바닥을 지나 꾸준히 호전되고 있는데 만나는 사람들마다 “돈이 안돈다”며 푸념이다. 문제는 불확실성, 기업도 개인도 투자를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굴릴 데가 없는 것이다. 개인도 기업도 여유자금을 운용하는 문제를 놓고 이제는 `어려움(難)`을 넘어 `고통(苦)`스러워하고 있다. 시설투자를 하거나 사업을 새로 시작하기는 불안하고 돈을 넣어둘 마땅한 재테크 수단도 별로 없다. 그래서 국고채에만 한 해 수십조원의 돈이 몰려 천정부지로 채권값이 올라간다. 혹시나 세제개혁의 유탄을 맞지 않을까 걱정하는 자산가들이 프리미엄을 얹어 무기명채권을 사들이는 것도 불안심리 때문이다. 은행의 프라이빗뱅킹이 때 아닌 호황을 누리는 것도 한푼이라도 더 건져보려는 거액 자산가들의 발길 때문이다. 그동안 알아서들 돈을 굴려왔던 부유층들이 투자처를 찾지 못해 안전한 은행에 박아두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요즘 자금시장은 갈팡질팡이다. 안전자산으로 `피난`하거나 아니면 단기 금융상품에 잠시 맡겨둔 채 어디론가 옮겨갈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처럼 기형화된 자금흐름의 물꼬가 실물경제로 방향을 틀지 않는 한 경제가 좋아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게 경제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뭉칫돈 안전하고 은밀한 곳으로= 최근 서울 강남과 명동 등지의 사채시장에서는 거액 자산가들이 무기명채권 사재기에 나서면서 웃돈을 주고도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상속ㆍ증여세 포괄주의를 도입하겠다는 새 정부의 방침과 북한 핵, 이라크 사태 등이 불안심리에 상승작용을 일으켜 `큰 손`들이 대거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만 해도 1만4,000원 정도면 살 수 있었던 증권금융채권 가격이 두달여만에 1만5,000~1만6,000원 수준으로 뛰었다. 그런데도 물건은 구하기 어렵다. 명동의 한 사채업자는 “가짜 무기명채까지 유통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무기명채 외에 달러에도 가수요가 붙으면서 암시장에서 달러를 사려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금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금값도 덩달아 뛰고 있다. 이 같은 일련의 현상은 지난 97년 말 외환위기 때 반짝 했다가 지난해 말부터 다시 시작된 것이다. 자산가들은 후각이 예민하다. 불안해지면 여지없이 재산을 숨기려 한다. 새 정부 출범후 정책방향이 구체화되고 국제정세가 안정되기 까지 은밀한 곳을 찾는 `피난 행렬`은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자산, 보수적 운용현상 심화돼=개인은 물론 은행 등 기관투자자들도 보수적으로 자산을 굴리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불안심리가 확산되면서 은행들의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보수적인 자산관리 전략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은행들의 국공채 총매입잔액은 작년 11월말 83조5,000억원으로 전년말의 78조원보다 7조5,000억원 늘었다. 투신사들 역시 머니마켓펀드(MMF)나 단기채권형 펀드로 몰리는 자금을 금융채, 통안증권 등 안정성이 높은 단기채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 이로 인해 금융회사의 채권별 순매수액에서 금융채와 통안증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달 38%였지만 올들어 78%로 배이상 늘었다. 반면 회사채 비중은 38%에서 11%로 줄었다. 채권시장에서는 특히 국고채에 대한 수요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올들어 지난 24일까지 국고채 거래물량이 하루평균 3조원(총60조원)으로 지난해 12월의 하루 평균 1조6,000억원에 비해 두배 가까이 급증했다. ◇단기부동화 갈수록 심화= 시중에 돈은 많이 있는데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안전하면서도 묶이지 않는 곳`에 자금이 몰리는 현상이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주식이나 채권, 부동산, 은행 정기예금 등 어느 한 쪽에 자금을 맡겨야 할 지 모르는 돈만 무려 370조원이 넘는다. 주식시장은 여전히 바닥인데다 은행 예금의 경우 세금과 소비자물가 등을 감안 할 때 사실상 마이너스라는 계산까지 나오면서 가입을 망설일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올들어 초단기 예금상품인 투신사 MMF(머니마켓펀드)에 무려 11조원이 넘는 자금이 몰린 반면 은행 요구불예금은 4조6,000억원 가량이 빠졌다. <이진우기자 ra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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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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