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렷한 이슈를 가지지 못하고 정상들의 만남 자체에 만족해야 할 것이라는 냉소적 평가가 고개를 들던 11월 주요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가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주목 받는 이유가 개도국 이슈 등 G20 의제가 아니다. G20 의장국인 우리 정부에서 분명 코뮈니케(논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선을 긋고 있는데도 위안화 절상, 슈퍼엔고(高) 해소를 위한 일본 정부의 개입 등 환율 이슈가 주목을 받고 있다. G20 서울 정상회의 의제 조율차 프랑스를 방문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서둘러 G20이 환율 전쟁터로 바뀌는 것을 진화하려고 나섰지만 역부족이다. 윤 장관은 2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G20의 성격이 오픈된 포럼인 만큼 환율문제에 관한 일반적인 해결방법이나 환율이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논의할 수 있다"며 "그러나 특정 국가의 환율에 관해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 장관의 진화작업에도 이미 세계인의 눈은 서울 G20 정상회의를 아시아와 비아시아의 환율 전쟁터로 인식하고 있다. 여기에다 미국은 아예 일본 정부의 환율개입을 지지한 중국을 향해 환율전쟁의 선전포고를 날렸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지난 16일 "중국의 위안화 절상이 너무 느리게 이뤄지고 있다"며 "서울 회의에서 환율 시스템 개혁을 위한 지지 규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제 문제는 과연 G20 의장국인 한국이 환율이라는 장외 이슈가 G20 전체 어젠다를 흔들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쉽지 않은 이슈다. 미국을 편들기도, 그렇다고 중국이 바라듯 환율문제에서의 한ㆍ중ㆍ일 정책공조도 어려운 상황이다. ◇11월 서울은 환율 전쟁터=일본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에 대한 중국의 지지는 결국 미국의 위안화 절상을 압박하는 당연한 수순으로 치달았다. 이번에는 G20이라는 수단을 이용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대중 무역적자에 미 의회에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뒤 중국 상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미 정부는 중국과의 본격적인 경제전쟁 발발을 우려해 대신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담판을 짓겠다고 의회를 진정시키고 나선 모양새다. 지난 6월 캐나다 정상회의에서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위안화 절상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듯이 미국의 타깃은 중국이다. 여기에 일본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환율을 인위적으로 올리지 않겠다는 공조를 깨며 환율전쟁의 전선은 확대됐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EU 입장에서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으로 인한 타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손을 놓고 볼 수만은 없다. 결과적으로 11월 G20 정상회의는 미국과 유럽을 한 축으로, 복잡하게 얽혀버린 중국과 일본을 한 축으로 환율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흔들리는 G20 의제, 당혹스러운 한국=미ㆍ중ㆍ일의 환율전쟁은 G2O의 의제 자체를 흔들고 있다. 한국이 의장국으로서 개도국 이슈를 제시하고 있지만 아시아와 비아시아권의 환율전쟁은 자칫 환율정책 공조국 간의 갈등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이 일본의 엔화 개입에 대한 지지나 가이트너 장관의 위안화 절상 규합 등은 G20을 환율전쟁의 연합전선을 위한 회의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국제통화기금(IMF)의 쿼터개혁, 은행건전성 방안 등 최종 합의에 다다른 논의들도 자칫 흔들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여기다 환율전쟁이 확산될 경우 미ㆍ중ㆍ일이 우리나라에 요구하는 상황도 제각각 틀려 어느 편을 들 수도 없다. 미국의 경우 원화절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고 중국과 일본은 미국의 환율압박에 대항한 정책공조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G20 의장국이라는 위치와 미국 편도 중국 편도 들 수 없는 상황은 G20을 앞두고 사면초가에 빠지게 한다. ◇환율 전쟁 진화 가능하나?=환율 전쟁은 감정적인 상황으로 전개돼 결국은 통상보복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겪어왔다. 한쪽이 완전히 백기를 들기 전까지는 쉽게 전선에서 빠져나오기도 힘들다. 지금과 유사한 2003년의 경우는 G7 정상회담에서 일방적으로 '동아시아 통화 유연화 합의'를 통해 위안화와 엔화의 절상을 유도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브릭스와 개도국들이 포함된 G20이라는 논의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결정은 글로벌 경제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과연 G20 의장국인 한국이 환율전쟁을 진화할 수 있느냐에 있다. 선진국과 개도국의 조정자의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상황에서 조정을 통해 글로벌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쉽지 않겠지만 서울회의에서 환율전쟁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 경제는 환율전쟁의 움직임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환율전쟁이 통상보복으로 이어질 경우 세계교역이 줄고 글로벌 경제가 다시 심각한 침체에 빠져들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이 위안화 절상 등을 양자 문제를 넘어 국제 쟁점화하려고 하지만 거대한 대미 흑자를 얻고 있는 중국ㆍ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도 나름의 논리를 펼치며 맞설 것"이라며 "한국 입장에서는 글로벌 경제의 불균형 해소를 위해 보다 과감하게 환율을 시장 흐름에 맡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