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서울경제TV SEN 개국 기념 인터뷰] 박승 前 한국은행 총재

"환율방어 어려움 있어도 외환보유고 손대지 말아야"<br>"최근 글로벌 경제위기 4~5년은 지속될것"<br>"성장중심 정책 보다는 민생안정에 초점 둬야"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서울경제TV 개국 기념 인터뷰에서 환율이 급등하고 있는 최근의 상황에 대해 “비록 환율을 지키는 데 어려움이 있더라도 외환보유고는 손을 대지 않는 게 낫다”면서 “만약 2,400억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고마저 축날 경우 국가신용등급 하락은 물론 환율이 올라가는 것도 막을 수 없게 된다”면서 외환보유고를 이용한 환율방어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또 최근의 세계경제 위기는 “지난 15년간의 고성장, 장기 호황 등에 따른 버블이 꺼지는 과정”이라면서 “세계경제의 기본 틀이 바뀌는 만큼 장기 정체기는 4~5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전 총재는 이와 함께 “한국경제 역시 세계경제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정부는 세계경제의 어려움이 상당히 오래간다는 전제 위에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면서 “성장 중심의 정책보다는 경제체질 강화와 민생안정에 초점을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도시보다는 재개발ㆍ재건축 활성화를 통해 주택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주택정책에 대해서는 “주택 문제는 이제 양이 아니라 질로 전환된 만큼 맞는 방향”이라고 공감을 나타냈고 수도권 규제완화와 관련해서는 “지방을 살리고 나서 수도권의 규제완화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박 전 총재는 이와 함께 “현재의 지지율만으로는 경제의 위기상황을 돌파하는 데 한계가 있어 부자ㆍ대기업만을 위한 정권의 이미지를 탈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세계경제 역시 요동치고 있다. 향후 세계경제를 진단한다면. ▦지금 세계경제의 혼란은 미국 주택경기 침체로부터 시작해서 금융부실로 전파됐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에 퍼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문제는 이번 위기가 단순히 금융위기만으로 끝날 게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경제의 기본 틀,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것은 지난 15년간의 고성장, 장기 호황 국면이 끝난다는 것을 의미하고 세계경제는 앞으로 장기 정체기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 15년간의 세계경제 버블이 끝나고 있다는 것인지. ▦그렇다. 좀 더 풀어서 말한다면 지난 15년간 세계경제는 신자유주의 질서, 개방체제의 적자생존 원리에 의해 확대 국면이었다. 동시에 세계경제는 중국ㆍ인도라는 저임금 경제권의 부상으로 새로운 시장ㆍ자원ㆍ노동력이 제공되면서 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이는 저물가, 저임금, 자산버블, 원자재 가격 폭등 현상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것이 끝 자락이 보이는 시점에 와 있다. 중국경제가 고비용 단계에 접어들었고, 또 한편으로는 자산버블, 예컨대 부동산 거품, 주식 거품, 원자재 가격 거품이 붕괴되고 있다. 이것들이 결합해 15년의 확대국면이 끝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세계경제는 저성장, 고물가, 고금리, 저유동성, 저주가, 저주택 가격, 저자원 가격의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본다. 장기 정체기로 접어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기 정체기는 4~5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경제가 요동치면서 한국의 경제도 위기상황인데 정부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 ▦정부가 앞으로 대책을 세우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의 어려움이 일과성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세계경제 상황이 매우 어렵고 상당히 오래간다는 전제 위에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는 경기부양으로 성장률 7%를 달성하는 쪽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경제위기를 방어하도록 경기체질을 강화하면서 어려워진 민생안정에 초점을 둬야 할 것이냐의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만약 경기부양을 택할 경우 저금리정책ㆍ고환율정책ㆍ확대재정정책 등을 써야 하는데, 그럴 경우 국제수지 악화 역시 감수해야 한다. 또 체질강화ㆍ민생안정에 초점을 두면 고금리ㆍ환율안정ㆍ물가안정 정책카드를 쓸 것이고 동시에 국제수지 안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다만 최근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경기부양의 경우 경제위기를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 경기부양보다는 민생안정ㆍ체질개선에 초점을 둬야 하지 않겠나 싶다. -제2의 외환위기 가능성도 종종 언급된다. 외환보유고는 충분하다고 보는지. ▦2,400억달러 정도의 보유고는 정상적 상황에서는 충분하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위기가 심화되고 한국의 신인도가 흔들리면 외환보유고는 부족하다. 최근 환율이 폭등하는 것도 경제체력 때문이 아니다. 체력이 아닌 세계 금융위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는데 한국에 투자한 외국의 금융기관과 기업체가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돈을 빼나가는 과정에서 환율이 오르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의 기업들도 덩달아 달러를 내놓지 않으면서 환율이 폭등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환율을 막겠다는 정책은 위험하다. 만약 외환보유고가 무너지면 국가신용도 자체도 무너진다. 우리가 2,400억달러를 지키고 있는 한 환율이 오르더라도 한계가 있다. 비록 단기적인 어려움이 있어도 환율이 올라가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하지만 만약 2,400억달러가 무너지면 환율도 신인도의 한계가 없어진다. 외환보유고는 되도록 손을 대지 말고 지켜가는 게 지금은 중요하다. -미국 금융위기의 원인이 과도한 규제완화,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 모델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신자유주의는 개방체제하의 시장제일주의다.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한다는 의미인데 무한경쟁 속에서 적자생존원리를 관철해 궁극적으로 효율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미국의 금융위기가 신자유질서 때문에 생긴 것은 사실이다. 금융의 세계화, 글로벌화된 무한경쟁과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데서 빚어졌다. 그렇다고 개방체제하의 시장제일주의 질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또 신자유질서 자체가 실패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약점의 일부가 노출됐지만 실패로 단정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리고 신자유질서가 앞으로 바뀌지도 않을 것으로 본다. 약점에도 불구, 세계경제에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신자유질서가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7ㆍ4ㆍ7(7% 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위 경제대국)이 가능할 것으로 보는지. ▦앞으로 세계경제는 저성장ㆍ고물가ㆍ고실업의 터널을 4~5년 지나야 한다. 우리나라 역시 그런 틀을 벗어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연간 평균 7% 성장을 하겠다고 했는데 나는 처음부터 어렵다고 봤다. 더구나 현재의 국제환경을 감안할 때 더 어렵다고 판단한다. 무리하게 밀어붙이다 보면 상당히 큰 부작용을 수반할 것이다.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은 4.5% 정도로 보고 있는데 성장잠재력은 인플레이션을 일으키지 않고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이다. 잠재성장률을 초과할 경우 결국 인플레나 국제수지 악화를 각오해야 한다. 정부가 임기 중 4~5% 성장만 달성해도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 그 자체가 훌륭한 업적이다. 정부가 성장률을 높이는 데 집착하기보다는 민생안정에 초점을 두는 게 낫다. -고질적인 양극화 문제, 이것 역시 해결해야 할 중요 사안인데. ▦민생경기가 그간 어려웠고 앞으로도 어려울 것으로 보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양극화와 세계경기의 침체다. 과거 5% 성장의 가장 큰 축은 바로 대기업의 성장이었다. 지난 5년간 대기업은 매년 30~40%씩 소득이 늘었다. 반면 가계소득은 크게 늘지 못했다. 대기업이 성장해 경제성장을 이끌었지만 민생섹터, 예컨대 농업ㆍ어업ㆍ중소기업ㆍ자영업자 등의 소득은 정체되거나 뒷걸음질쳤다. 이런 게 양극화다. 물론 양극화는 과거에도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이 문제는 더 커질 가능성이 많다. 세계경제마저 침체기로 접어든 마당에 현 정부가 성장드라이브 정책에 매진할 경우 양극화는 더 확대될 것이다. -수도권의 규제완화를 놓고 공방이 치열하다. ▦수도권 문제도 100년, 200년 앞을 바라보고 풀어야 할 문제다. 선진국으로 진입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이 수도권의 과밀과 지방의 황폐화, 즉 극단적인 국토의 불균형 발전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고비용의 원인이 국토의 불균형 발전이다. 주택ㆍ환경ㆍ교통ㆍ교육 등의 문제가 서울ㆍ수도권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지방의 경우 초등ㆍ중학교는 텅텅 비어 있다. 반면 서울ㆍ경기는 학교가 모자라 학교를 더 짓고 있다. 정부는 지방에서도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일시적인 상황만 보면 안 된다. 지방에 일터를 만들고 교육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방의 세금은 무조건 50% 낮춘다는 식의 극단적인 ‘이원적 세율’ 같은 정책을 해야 지방으로 가지 않겠는가. 대학입학도 지방 학생이 불리하지 않도록 내신 중심의 제도로 바뀌어야 한다. 결국 지방을 살린 다음에 수도권의 규제를 푸는 게 순리다. -신도시보다는 재건축ㆍ재개발을 통해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게 이명박 정부의 정책이다. ▦동의한다. 우리나라의 주택문제는 주택보급률 100%를 넘어서면서 양의 문제에서 질의 문제로 전환됐다. 질의 문제로 전환된 만큼 접근방식도 바꿔야 한다.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집을 지어 공급하는 것과 과거의 불량주택을 헐어 없애야 한다. 선진국 진입을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다. 그래야 서울의 주택문제도 해결된다. 이 두 가지를 병행할 유일한 방법이 재개발ㆍ재건축 활성화다. 나쁜 집은 헐고 좋은 집을 지어서 해결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신도시만 지어서 해결하겠다는 것은 한계가 있다. 과거 1990년대 5대 신도시 건설을 내가 주도했는데 당시의 신도시 건설은 주택이 절대적으로 양적으로 부족한 시기였기에 적합했다. 당시 주택보급률은 56%에 불과했다. 신도시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재개발ㆍ재건축을 활성화하되 동시에 지방에서 충분히 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미국이 정권교체기인데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한미 FTA를 놓고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는데, 하지만 한미 FTA는 조속히 비준될수록 좋다고 본다. 개방질서와 신자유질서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앞으로도 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이 같은 세계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질서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FTA다. 한미 FTA 비준문제가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어렵다. 우여곡절은 거치겠지만 결과적으로 비준될 것으로 본다. 만약 비준을 하지 않고 한미 FTA가 사장될 경우 한국과 미국 어느 쪽에도 이득이 안 될 것으로 본다. -출범 8개월이 돼가는 이명박 정부에 당부한다면. ▦세계경제 환경이 대단히 어렵다. 이 대통령은 친기업적인 정책을 가지고 경제를 살려 국민생활을 윤택하게 하려는 꿈을 가졌을 것이다. 이런 구상이 세계경제의 장벽에 부닥쳐 큰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을 테고. 그러나 현실은 현실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국제적인 환경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게 바람직하다. 성장 드라이브 정책보다는 민생안정 정책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도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전폭적인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의 지지율로는 한계가 있다. 정부에 대한 지지확충이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 걸림돌이 되는 게 대기업과 부유층을 대변하는 이미지다. 특히 지난번 감세정책과 종부세 문제는 부유층을 위한 정권이라는 이미지를 굳히게 된 계기가 됐다. 이런 점에서 대통령께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 심사숙고하고 대책을 세워야 한다. ● 박승 前총재는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한국 경제발전의 살아 있는 증인'이라고 불린다.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1976~1988년), 청와대 경제수석(1988년), 건설부 장관(1988~1989년), 대한주택공사 이사장(1993~1996년), 한국은행 총재(2002~2006년) 등을 역임하며 한국경제의 발전과 호흡을 같이했다. 서울대를 졸업한 뒤 지난 1961년 당시 최고 직장이었던 한국은행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한은 해외유학 장학생 1호'로 선발돼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설부 장관 시절에는 분당ㆍ일산 등 5개 신도시를 입안하기도 했다. 학계와 정부를 종횡무진으로 넘나드는 경력을 쌓던 박 전 총재는 카드 남발을 통한 인위적 경기부양이 절정이었던 2002년 친정인 한은으로 돌아왔다. 임기 초반 정부의 입김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뚝심'으로 금융통화위원회의 독자적인 결정권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약력 ▦1936년 전북 김제 ▦이리공고ㆍ서울대 경제학과 ▦1961년 한국은행 입행 ▦1976~2001년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1986년 금융통화운영위원 ▦1988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1988~1989년 건설부 장관 ▦1993~1996년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1997년 교통개발연구원 이사장 ▦2001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2002~2006년 한국은행 총재 ※ 본 대담 기사는 서울경제TV 개국일인 10일 0시10분, 오전 9시30분, 오후 7시30분에 서울경제TV에서 방송됩니다. 각 지역 채널 번호는 옛 무협TV 번호를 그대로 이용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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