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4월 17일] 풍요의 우물을 판 기업인들

[목요일 아침에/4월 17일] 풍요의 우물을 판 기업인들 이현우 논설위원 hulee@sed.co.kr 우물물을 먹을 때 그 우물을 판 사람을 기억하라는 속담이 있다. 앞서 간 사람들의 노고에 고마워하라는 것이다. 최근 이 말을 떠올리며 그 의미를 되새긴 적이 많다. 한 달 새 며칠 간격으로 창립기념일을 맞았던 삼성ㆍ포스코ㆍSK의 성장사를 다룬 기사들, 그리고 이미 고인이 된 기업인을 모델로 등장시킨 광고를 보면서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회장, 고 이병철 삼성그룹회장, 고 최종현 SK그룹회장,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오늘날 세계 최고의 경쟁력으로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리고 있는 조선ㆍ반도체ㆍ철강 산업이 그들의 머리와 손발에서 시작된 것이니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의 우물을 판 주인공들 아닌가. 30~40년 전 이런 사업을 시작할 때 그들은 맨주먹이었다. 자본도 기술도 사람도 모든 게 부족했다. 그러나 그들은 앞을 내다보는 혜안과 결단력, 소명의식, 불굴의 도전정신,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땀으로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신화를 창조했다. 정주영 회장은 울산의 백사장 사진과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들고 영국ㆍ그리스의 은행과 선주들을 찾아가 조선소 지을 돈을 빌렸고 배를 수주했다. 우리 조상들은 당신네들보다 훨씬 앞선 1500년대에 철갑선을 만들었으니 실력을 믿고 맡겨달라는, 코미디 같은 설득으로.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 때 안팎의 반대가 거셌다. ‘삼성이 망하려고 작정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박태준 회장은 목숨을 내놓겠다는 각오로 포항제철을 세웠다.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현장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영일만에 빠져죽는다는 이른바 ‘우향우’ 정신으로 덤벼들었다. 무모함에 가까운 정 회장의 도전과 열정이 없었다면 지금 현대중공업과 국내 조선 산업이 세계시장을 휩쓸 수 있었을까. 이 회장이 실패의 두려움으로 반도체의 뜻을 접었다면 삼성전자가 세계 초일류기업 반열에 오르고 우리 정보기술(IT)산업이 지금처럼 꽃을 활짝 피울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삼성전자는 그저 그런 수준의 전자업체 신세가 돼 있을지 모른다. 삼성전자가 디지털멀티미디어ㆍ휴대전화 등 이상적인 사업구조를 구축하고 전천후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은 반도체가 있어서 가능했기에 하는 말이다. 포스코가 없었다면, 그래서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재의 안정적 공급이 뒷받침되지 못했다면 국내 조선ㆍ자동차ㆍ전자 산업이 지금처럼 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최종현 회장은 SK그룹을 에너지와 이동통신의 최고강자로 키워낸 데서 보듯 경영능력도 탁월하지만 조림을 통해 벌거숭이 산을 울창한 숲으로 바꿔놓은 또 다른 면모를 가진 기업인이었다. 그가 씨를 뿌린 조림사업은 올해로 35년을 맞았다. 충주 인등산, 천안 관덕산, 영동, 오산 등 1,200만평에 심은 묘목 378만 그루는 지름 30㎝의 나무로 자라 산을 덮고 있다. 일부 조림지는 대학에 기증, 실습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최 회장의 조림사업은 산림녹화와 인재양성을 위한 장학금 마련을 위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큰 반대에 부딪쳤다. 투자기간이 길고 전망도 불투명하다는 것이었다. 땅 장사한다는 오해도 받았다. 그는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무를 심는다며 설득했고 경사가 심한 지방의 악산과 오지를 택했다. 투기 오해를 벗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수도권은 언젠가 개발될 가능성이 크고 그러면 애써 가꿔온 나무들이 못 쓰게 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수종도 당시 권장됐던 상록수 대신 산소배출량이 많고 경제성이 좋은 활엽수를 심었다. 지금의 환경문제ㆍ 자원무기화 추세에 비춰보면 그의 혜안이 돋보인다. 이들 걸출한 기업인이 파놓은 우물 덕에 한국 경제는 세계 11대 경제국, 소득 2만달러 고지에 올라섰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목이 마르다. 기존 우물은 더 크고 깊게 만들고 새 우물도 파야 한다. 그러려면 기업 영웅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정주영ㆍ이병철ㆍ최종현ㆍ박태준이 더 그리워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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