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될 경우 총 3조원에 달하는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의 페이퍼컴퍼니를 통한 조세탈루 길이 막힐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정부가 조세조약을 통해 조세피난처에 세금을 매기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지난해 런던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역외탈세 근절에 적극 나서자는 합의를 직접 실천하는 첫 사례라 관심이 모이고 있다.
10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우리 정부 대표단은 12일까지 과천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두고 말레이시아와 조세조약 협상을 벌인다. 이번 협상은 지난 2005년 이후 5년 만에 재개된 4차 협상으로 우리 정부는 조세회피 행위가 빈번한 라부안을 한ㆍ말레이시아 조세조약 범위에서 완전히 제외해 양국 간의 이중과세 방지 및 비과세, 제한세율적용 혜택 등을 배제하는 방안을 말레이시아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한ㆍ말레이시아 조세조약은 1983년 제정된 후 17년간 한번도 바뀌지 않은 만큼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부분이 많다"며 "이번에 개정할 조세조약에 정보교환, 조세조약 남용금지 조항 등을 포함시켜 라부안을 통한 조세회피를 근본적으로 막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조약개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2005년에 3차까지 열렸던 조세조약개정 협상이 5년이 지난 올해에야 재개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재 영국ㆍ일본 등 대다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의 조세조약에서 라부안이 배제되고 있지만 말레이시아는 "당시 협상이 잘못된 것"이라며 우리 요구에 소극적인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인구 8만5,000명의 작은 섬인 라부안은 1990년 말레이시아 정부가 자유무역지대로 지정하고 역외금융센터를 설립하면서 세계적인 조세피난처로 주목 받았다.
2005년 제일은행을 스탠다드차타드은행에 매각해 1조1,800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겼던 뉴브리지캐피털이 라부안에 페이퍼컴퍼니를 뒀다는 이유로 우리 과세 당국은 단 한푼도 세금을 걷지 못해 여론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정부는 이듬해 라부안을 조세회피지역으로 지정해 소득세를 원천 징수한 후 페이퍼컴퍼니로 판명되면 세금을 환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원천징수만으로는 검은 머리 외국인의 조세탈루를 완전히 막을 수 없다고 판단, 한ㆍ말레이시아 조세조약에서 라부안을 아예 빼버리는 것을 명문화할 방침이다.
한편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말레이시아 투자자가 국내에 투자한 주식 금액은 9,648억원, 채권은 2조659억원으로 집계됐다. 금융 당국은 95% 이상이 라부안에 근거를 둔 투자이며 이 중 상당 부분이 역외탈세를 위한 페이퍼컴퍼니로 파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