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12월 24일] 블루 홀리데이

지난 18일 취재차 찾아간 '천사의 도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성탄절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캐럴은 고사하고 트리 장식도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착 가라앉아 있었다. 자영업에 종사하는 한 교민은 "일거리가 많지 않아 공치는 날이 적지 않다"며 "50~70% 이상의 클리어런스(Clearance)세일을 하는 쇼핑몰에서 저렴한 제품을 구입해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로스앤젤레스 근교에는 주인을 찾지 못한 빈 주택이 늘고 있는 추세다. 로스앤젤레스의 사례는 최근 경기침체로 고통을 겪고 있는 미국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1여년간 몰아친 경제위기로 일자리를 잃거나 경제적 타격을 받은 미국인들은 잔뜩 위축돼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국인들은 연말연휴에 가족과 여행갈 엄두도 못 내고 있다. USA투데이ㆍ갤럽이 1,000여명의 미국 시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여행을 준비한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이 여행을 포기하거나 규모를 줄이고 집에 틀어박히는 쪽으로 마음을 바꿨다. 크리스마스카드 발송건수도 지난해보다 11% 줄어드는 등 경제위기의 우울한 분위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 경제위기를 촉발한 모기지 악성연체 건수 역시 급증해 경제침체의 우려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미국 통화감독청(OCC)과 연방저축기관감독청(OTS)에 따르면 3ㆍ4분기 미국 프라임 모기지의 60일 이상 악성연체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118% 급증했다. 모기지 부실 심화는 경제위기 과정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중산층 붕괴를 의미한다. 1990년대 말 태국 바트화 가치폭락으로 시작해 아시아ㆍ러시아ㆍ유럽 등 전세계를 무섭게 몰아치던 경제위기에서도 나홀로 건재하던 미국의 위상을 떠올려 보면 이러한 현상은 불과 10년 만의 엄청난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이런 미국의 모습은 지난 10여년간 '생즉사, 사즉생'으로 목숨을 내걸고 변화를 추진하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한국 기업ㆍ국민의 모습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느낌이다. 초일류국가라는 방심ㆍ오만이 불러온 무서운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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