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안에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2인자로 통하는 이학수 부회장이 9일 안기부 X파일 사건의 참고인 겸 피고발인 자격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삼성그룹이 한나라당에 수백억원대의 대선자금을 제공한 사실과 관련, 작년 2월26일 대검 중수부에서 소환 조사를 받은 뒤 1년6개월만이다.
이번에는 도청 사건의 협박, 공갈 피해자이기도 하지만 1997년 대선 직전 삼성그룹의 불법 대선 및 로비자금 제공 의혹과 관련돼 있어 두번 모두 정치자금 때문에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안기부 X파일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이날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는 40여명의취재진이 1시간 전부터 자리를 잡고 이 부회장을 기다렸고, 삼성그룹 관계자들도 취재진과의 몸싸움에 대비해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다.
굳은 표정으로 차에서 내린 이 부회장은 심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여러 모로 걱정을 끼쳐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X파일에 담긴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현 주미대사)과 대화한 내용을 인정하느냐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한 채 "검사실에서 필요한 조사를 다 받겠다"고만 답한 뒤 조사실로 향했다.
제일모직 경리과에서 삼성맨 생활을 시작한 이 부회장은 대선자금 수사 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 쏠리는 정치자금 제공 의혹을 총대를 메고 막아냈다.
그는 불법 대선자금 출처에 대해 `이건희 회장의 개인 돈 385억원을 독자적인판단에 따라 여야 정치인에게 건넸다'는 주장을 완강하게 되풀이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자금 출처에 대해 대주주의 사재라는 주장을 되풀이하자 이건희 회장에 대한 조사는 생략하고 이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이 부회장은 작년 9월 1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항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됐지만 올해 5월 불법 대선자금에 연루된 다른 기업인들과 함께 석탄일 특사로 사면됐다.
검찰은 X파일 사건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주미대사의 소환 검토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혀 이 부회장이 다시 총대를 멜 지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이광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