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는 시책은 어떤 것이라도 시행 전에는 보편타당성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그 후에는 상황변화에 따른 보완책이 따라야 한다. 현실적으로 아무리 중요한 정책도 보편타당성에 문제가 있다면 바로 재고하는 것이 순리다. 보편타당성은 공익을 담보한 정책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기본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 보건당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보험약품 `최저실거래가제`는 보편타당성이 부족한 대표적인 사례 중의 하나이다. 제약사가 특정 의약품을 100개 중 99개를 1,000원에 팔고 1개를 500원에 판매하다 적발될 경우 500원으로 강제로 인하 시키는 이 제도는 건강보험 재정안정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도움을 줄지 모른다. 그러나 관련조항을 뜯어보면 어떻게 시행될 수 있었는지 무모하리 만큼 결단성 있는 당국의 의지에 놀라움을 느낀다.
더구나 제도시행을 전후로 제약업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당국에 보완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애써 무시한 것은 마땅히 폐기해 박물관에나 있어야 할 `관존(官尊)` 의식이 아직도 정부 일각에 팽배해 있지는 않은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의약분업을 앞둔 시점만 해도 상당수 제약사는 이 제도가 약값의 불필요한 거품을 걷어내면서 유통 슬림화를 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건강보험 재정난이 불거져 나오면서 구멍 난 건보재정을 충당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해당 제약사의 경우 약값 인하과정에서 국민들에게 건보재정 파탄의 주범인 것처럼 비춰지는 것은 고사하고서라도 모든 책임을 제약사에 뒤집어 씌운다는 것은 행정편의주의라는 말 외에는 적절한 표현이 없다.
예를 들면 특정약품의 약값을 인하할 경우 그 대상을 제약사가 요양기관에 직접 납품한 물량으로 하고, 유통된 양이 어느 정도인지 평균치를 적용하는 것은 최소한의 이치지만 당국은 평균치는커녕 도매상의 일방적인 저가납품 공세의 책임까지 제약사가 지게 하고 있다.
도매상이 제약사의 뜻과는 무관하게 현금유동성 확보나 도매상 사이의 출혈경쟁으로 저가판매 공세를 하다 적발된 경우에도 피해는 고스란히 제약사의 몫으로 돌아간다. 더구나 당국이 `1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에 의약품을 납품할 경우 반드시 도매상을 통해야 한다`는 법규를 살려 놓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관련제도는 제약업계를 지나칠 만큼 통제하고 폄하한다는 인상까지 준다.
그렇다고 이 제도가 전혀 의미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어떠한 제도라도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목적변질을 철저히 막아야 하고, 시장경제체제의 기본원리를 준수해야 한다는 것은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문제가 있다면 즉시 보완해야 한다. 행정편의주의와 정책의 일관성은 근본부터 다르다.
<박상영(사회부 차장) san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