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8월8일] 허치슨


프랜시스 허치슨(Francis Hutcheson).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근대 경제학의 주춧돌을 쌓은 사람이다. 허치슨이 없었다면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도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공리주의 철학과 조세론ㆍ통계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1694년 북아일랜드에서 태어나 글래스고대학에서 문학과 철학ㆍ신학을 공부한 뒤 더블린으로 돌아와 10여년간 사립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뛰어난 졸업성적에도 모교에 남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 아일랜드인에 대한 차별과 교회의 비위를 건드린 탓이다. 신(神)은 신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은 자연신학자 허치슨은 교회의 반대를 뚫고 1729년 모교의 도덕철학 교수로 임용된다. 익명으로 출간한 ‘미와 덕의 기원(1725년)’ 등의 실제 저자로 밝혀진 직후다. 라틴어를 거부하고 영어로 강의한 첫 교수였던 허치슨의 핵심 관심사는 ‘이타심’. 누진세의 원리를 소개하고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도덕성을 계산할 수 있는 공식 B=(M±I)/A를 만들기도 했다. 공식의 결과는 ‘다수의 행복이 최대의 선’. 인문학 계량화ㆍ통계화와 공리주의 철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53번째 생일인 1747년 8월8일 사망한 허치슨이 남긴 가장 큰 흔적은 제자인 애덤 스미스. 교수직까지 물려줬다. 스미스의 초기 저작인 ‘도덕감정론(1759년)’은 허치슨의 ‘도덕철학체계론’과 내용은 물론 목차마저 비슷하다. 허치슨처럼 이타심을 중시하던 스미스가 국부론에서는 개인의 이기심을 강조하게 된 이유는 요즘도 논란거리다.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만능주의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동정심을 내포한 것이라는 주장에서 성장이냐 분배냐의 논쟁까지 그 기원에는 이 사람이 있다. 허치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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