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파 대거 영화로…'프리 프로덕션' 양상효과도대학로에 배우기근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
배우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 영화 붐이 정착되며 '연기가 되는' 배우들에게 영화판의 러브콜이 쏠린 탓이다.
대학로의 한 기획자는 "4~5 년차 이상 된 '쓸만하다'싶은 배우들과 접촉을 하면 열에 아홉은 영화 스케줄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며 "충무로에서 안 부르면 바보라는 말이 나올 판"이라고 말했다. 배우의 영화 스케줄 덕분에 공연연습 시간이 종횡무진 변경되는, 전에 없던 현상도 극단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대학로 내 영화 붐은 영화 언어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며 연기의 바탕을 익힌 '배우'를 원하는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 이에 따라 대학로 출신 영화 스타 탄생도 빈번해졌다.
'박하사탕'의 설경구, '반칙왕'의 송강호, '태백산맥'의 방은진 등이 모두 대학로 출신으로 영화에 출연, 그 존재를 각인 시킨 배우들이다.
최근의 경향은 더욱 활발하다. '나비'로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탄 김호정이나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걸죽한 노래솜씨를 뽐낸 오지혜 역시 배우 출신.
현재 1인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공연중인 서주희도 '꽃섬'에 출연해 깊이있는 연기세계를 선보였다.
영화판에선 그만큼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것도 배우들의 충무로 행을 부채질하는 다른 이유다.
중견 배우 Y모씨는 "편당 기 천만원을 받는 영화에 매년 두어 편 출연해 돈을 벌고 대학로에선 연기만 한 셈"이라며 "배우로만 살기엔 아직 대학로가 열악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기획자는 "아직도 대학로 배우의 주연급 출연은 드문 일"이라며 "몇 신 되지 않는 출연 장면을 찍기 위해 하염없이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하는 젊은 배우들의 모습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의 한 교수도 "소극장이 연기의 뿌리요 근본이란 건 누구보다 배우들이 잘 안다"며 "바쁜 건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론 슬픈 일"이라고 답했다.
반면 다른 극단 대표는 "미국에선 어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대 스타가 바로 다음 날 소극장 무대에 서는 일이 허다할 정도로 배우에게 영역 구분은 무의미하다 "며 "떠나는 배우 탓을 하기 전에 안정적인 울타리가 되지 못하는 소극장 시스템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 이러한 현상이 증폭되면서 긍정적인 효과도 나타났다. 대학로에 '프리-프로덕션(pre- production)'시스템이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한 것.
바쁜 배우들 탓에 이들을 무대에 세우기 위해선 1년여 전부터 움직여야 했고, 이는 주먹구구식이던 진행 시스템에 변화를 가져왔다.
장기적인 사전 기획과 극장 확보, 출연 관리 등 체계적인 사전 제작시스템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물론 연출-작가-배우가 '한솥밥 먹는 식구'처럼 움직이던 기존 대학로 극단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2002년도 가족뮤지컬 'MARS(화성ㆍ4~5월)', '이발사 박봉구(5월)', '락희맨쇼(10월)'를 공연하는 극단 동숭아트센터는 이의 오디션을 내년 1월7일로 앞당겨 실시한다.
극단 관계자는 "비단 배우 뿐 아니라 좋은 연출가나 작가를 잡기도 힘들어졌다"며 "작가를 미리 섭외해 6개월간 대본을 완성시켰고 배우 역시 오디션 뒤 바로 계약금을 지급해 스케줄을 확보하는 등 사전 제작시스템을 강화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희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