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암사 계곡에서 바라본 '승선교'와 '강선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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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종찰을 가다] "홍매화 필 무렵 전화해요"
장선화 기자 india@sed.co.kr
선암사 계곡에서 바라본 '승선교'와 '강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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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종찰의 순례길에서 선암사를 들르기로 한 것은 언뜻 영상으로 본 무지개다리와 정자 같은 건물의 여운 때문이었다. 절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는 채로.
차가 다니지 않아 걷기 좋은 선암사로 오르는 길에서 다리 하나를 건너 승선교(昇仙橋)가 보인다. 벼랑에서 몸을 던진 대사를 구하고 사라진 한 여인이 관세음보살임을 깨닫고 절 입구에 세웠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그 무지개다리.
‘애게~ 이게 뭐야.’ 아까 건넜던 다리와 크기만 조금 차이가 났지 별반 다를 것 없는 무지개다리.
강선루(降仙樓). 선암사가 자리잡은 조계산 산줄기의 풍수지리상 흠을 보완하기 위해 세웠다는 문루라고 하는데 역시 특별하다고 할만한 것은 없다. 그런데 다시 무지개다리로 와서 아무리 봐도 정자 같은 강선루는 무지개다리 위에 있지 무지개다리 사이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거 어떻게 된거야?… 내려가도 되나?’ 주위 눈치를 살짝 보며 계곡으로 내려서 몇 발자국 옮긴 순간, 아! 영상으로 본 그 그림대로 무지개다리 안으로 강선루가 보인다.
하지만 그때 그 순간은 영상으로 본 그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마치 반달형 창문 너머로 물 흐르는 계곡에 아스라이 정자가 보이듯 꿈꾸듯 아득히 너울거리는 강선루. 그 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빨려 들어갈 것과 같이.
왜 그렇지? 따로따로 볼 때는 별 것 없던 승선교와 강선루가 아래에서 볼 땐 이렇게 다르게 보이는 것이. 따로따로 봐서 그런 것 같다. 처음부터 그렇게 보았다면 절경이니 정도로 보았을 것이다. 아! 화엄의 세계가 이런 것인가? 서로 만나지 않았을 때는 그저 그렇던, 아니 각각으로는 보는 사람에 따라 각기 나름의 의미가 분명히 있었을 사물이 어떤 계기로 만났을 때 사물과 사물의 단순한 합침이 아닌 전혀 다른 가치의 탄생인 것을…. 따로 있으면 사라지고 같이 있으면 나타나고, 따로 있으면 나타나고 같이 있으면 사라지는.
선암사(仙嚴寺) 경내로 들어섰다. 절은 누추했다. 한 편은 수리 중이고 다른 편은 낡고, 오래된 ‘뒤ㅅ간’에서 어릴 적 공포를 되새긴 것이 신선하다면 신선한 것. 절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다 눈에 띄는 현판도 별로 없는 절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다.
모두 닫혀 있는 허름한 전각들. 이때 한 스님이 나타났다. “좋은 것 보여줄까요?” “네?.. 네.” 스님이 문 따 주어서 들어가는 길목, 부엌에 옛날 얘기로만 들었던 조앙신도 흘낏 보고, 마당이 보였다.
스님이 보여준 것은 산 약수가 통나무 속을 흘러 대롱으로 연결된 큰 자연석 함지박 네 개에 담겨 마지막 네 번째 돌 함지박에서 떠먹을 수 있게 만든 운치있는 물 마시는 시설이었다. 나중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이름이 달마수각이라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면 꽤 찾는 장소인 듯 하다. 마당을 나와 참선의 명당이라며 달마전 문을 열어서 눈구경 시켜주시고.
스님이 기거하는 승방으로 안내되어 생전 일면식도 없는 스님과 마주앉게 되었다. 우리 일행의 도움을 사양하고 노승은 손수 찻물을 끓이고 찻잔을 배열하고 찻잔 받침을 놓았다. 그 와중에도 노승은 이런저런 절 이야기, 수행이야기, 이 절이 배출한 고승이야기, 불도이야기, 중 이야기, 그리고 간간히 묻는 나의 질문에도 자연스럽게 답하며 차 준비를 해 나갔다.
찻물이 우러나오고 노승은 찻잔에 차를 따라 나갔다. 한 번에 다 채우면 안되고 나누어 따라야 한다며 일행에게 골고루 세 번 나누어 따랐다. 첫 잔이다. 찻잔을 들어 은근히 마셨다. 맛이 떫은 맛이 전혀 없고 묵직하고 약간 단 맛이 난다. 노승이 장난기 비친 눈 빛으로 묻는다. “어때요? 떫지 않죠?” “네에.” 계속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두 번째 잔을 채운다. 역시 세 번 나누어 따른다. 두 번째 잔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조금 더 단 맛이 난다. 노승이 또 묻는다. “더 부드러워지죠?” “네에.”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며 세 번째 잔.
마찬가지로 일정한 속도로 세 번 나누어 따랐고, 역시 첫 잔과 같이 은근히 마셨다. 이런, 따뜻한데 더 부드러워지고 단 맛은 연해지는 듯 여운은 더 오래 갔다. 스님이 또 물었다. “단 맛이 더 강해지죠?” “예!” 이런 맛은 더 이상 설명하기 어렵다. 녹차에서 이런 맛이 나다니… 손바닥으로 물의 온도를 느끼고, 우러난 차를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따라야 제대로 맛이 나온다고 한다. 더구나 이 차는 야생 차밭에서 봄에 수확한 스님에게도 두 봉지 밖에 나누어지지 않은 자연차였다.
‘다선(茶禪)’이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다. 선 수행 할 때 차 마시는 일쯤으로 알고 있었으나 그것이 아님을 알았다. 도력과 차 타는 솜씨는 비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고 이야기를 원만하게 이끌어 가면서도 찻물을 우려내고 찻잔에 나눠 따르는 시간차를 맞춘다. 노승 말을 듣는데 권위가 느껴지지 않았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화제가 전환되어 나갔고, 마지막 차의 맛을 보면서 노승에게 권위를 느꼈다.
차를 마신 후 스님은 칠전선원 뒤 오천여평의 야생차 밭을 소개시켜 주었다. 순천만에서 불어온 해풍이 조계산 산세를 따라 이 곳으로 모여 질 좋은 야생차를 길러내는 천혜의 환경을 만들어 낸다고. 여기 자생차 군락지의 차나무의 수령은 6~7백년 이상 되었는데 이정도 된 차나무는 뿌리가 2미터 이상 된다고 한다.
스님은 차나무 뿌리는 곁가지가 없고 땅 속 수직으로만 깊게 뻗어서 예전에 딸을 출가시킬 때 일부종사하라는 의미로 차나무를 같이 보내기도 했다면서 중이 출가하여 부처를 섬기는 것도 일맥상통할 것이라고 말한다.
중은 차를 다루면서 차나무의 이런 내력도 생각하겠구나 싶고 세 번째 잔의 마지막 녹차 한 방울 맛이 감로(甘露)의 맛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면서 다선(茶禪)의 의미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노승은 오래된 담장 옆 줄지어 선 수백년 된 홍매화를 가리키며 “여기 홍매화가 아주 좋아요”라고 말했다. 내가 “홍매화가 언제 피죠?” 물었더니 “홍매화 필 무렵 전화하고 와요. 알려줄테니” 그러면서 휴대전화 번호를 불러준다. “010 에 나무아미타불”
석가모니에게 가르침의 말을 청하며 바친 연꽃을 석가가 대중에게 들어보이자 가섭(迦葉)이 홀로 미소지었다는 ‘염화미소(拈華微笑)’는 선가(禪家)에서 선(禪) 수행을 하는 근거로 삼는 것이며, 스승이 제자에게 후계를 물려줄 때 제자의 마음을 확인해 보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을 다른 각도에서 해석해 보면 어떨까? 아마 가섭은 석가가 연꽃이 아닌 숟가락을 들었어도, 윙크를 했어도, 석가의 뒷모습만 보고도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부처의 위대성은 깨달음의 자리를 독점하지 않고 개방했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깨달은 자를 위하여 자신의 자리를 비워두었다. 또한 부처는 후계자 선정의 무차별성을 보여주었다. 제자 중 자신의 사촌들에게도, 하나뿐인 아들에게도 법통을 승계하지 않았다. 제자 중에 재주가 뛰어난 자들이 많았지만 수행의 진심을 본 가섭에게 법을 전수하였다. 부처는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정(定)’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혜(慧)’는 ‘부처님의 말씀’이며, ‘율(律)’은 ‘부처님의 행실’이라, 스님이 중(重)하면 부처의 말씀도 중하고, 스님이 경망(輕妄)하면 불사리도 경하다는 말을 누군가 했다. 부처님, 부처님 말씀, 부처가 되고자 하는 스님이 하나라고 하는데 그 중에 제일은 역시 스님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1) 위 휴대전화 번호는 극도로 보안을 요하는 번호이므로, 혹여 선암사에서 노승을 만나보기를 원하는 독자가 있다면 찾아 보십시오. 아니면 당신이 찾기도 전에 문득 당신 앞에 나타나 있을 지도 모르지요.
2) 선암사의 달마수각, 한자로는 아마 達磨水閣일텐데 이 식수시설물 위에는 집(閣)도 없고 문설주도 없어 노천인데 왜 달마수각일까는 달마선승의 기국을 떠올리면 아시겠죠?
3) 나중에 알았다. 달마수각, 달마전이 있는 그곳이 조선시대 4대 선원 가운데 하나인 칠전선원(七殿禪院)이었다는 것을.
4) 송광사 경내에는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으니 휴대전화로 시간을 보거나 알람을 맞춰 낭패를 보는 일이 없으시기를.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