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2월 30일] 마셜플렌

전쟁은 끝났지만 유럽의 현실은 비참했다. 생산과 소비, 어느 것도 전쟁 이전 수준을 밑돌았다. 1947년 겨울엔 식량부족에 시달렸다. 2년 후인 1949년의 그림은 딴판이다. 유럽 주요국의 경제는 전쟁 전보다 15% 넘게 성장했다. 어떤 마술이 펼쳐진 것일까. 마셜플랜(Marshall Planㆍ유럽부흥계획) 덕이다. 골자는 대규모 원조. 1947년 조지 마셜 미 국무장관의 제안으로 이듬해 4월부터 시작돼 1951년 12월30일 종료되기까지 130억달러가 유럽의 전후복구에 들어갔다. 미국이 거액을 투자한 것은 유럽의 공산화 위험 때문. 좌우내전 상태인 그리스에 주둔하던 영국군이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며 철수하자 미국은 더욱 다급해졌다. 전후 복구가 미진한 유럽을 방치할 경우 소련에 넘어간다는 위기감에서 금고가 열렸다. 원조에는 미국제 우선 구매라는 조건이 붙었다. 선박에서 보험가입, 곡물, 생필물에 이르기까지 성조기가 나부꼈다. 미국 경제는 침체조짐에서 벗어났다. 마셜플랜이 미국 패권주의의 다른 표현이라는 점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지만 두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냉전의 격화와 유럽의 부흥이다. 마셜플랜이 진행된 4년간 유럽경제의 성장률은 36%에 달한다. 마셜플랜은 사회주의권의 단결을 낳았다. 1948년 6월부터 1년간 베를린봉쇄가 지속되는 동안 인류는 3차대전의 위기에 떨었다. 나토가 결성된 것도 이 무렵이다. ‘동서냉전은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스탈린 선언으로 유럽은 전쟁위기에서 벗어났지만 불똥은 극동으로 튀었다. 한국전쟁과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그것이다. 마셜플랜과 냉전구도 속에서 번영가도를 질주한 미국과 유럽의 그림자엔 한반도 분단 고착화라는 역사가 숨어 있다. /권홍우ㆍ경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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