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내수를 당장 진작시켜라

월가(街)는 한국을 선행경제지표로 활용한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산업생산이 줄어들면 미국의 산업생산도 감소할 때가 많았다. 월가는 올해 초 한국의 경제불안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과 총선을 둘러싼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불행하게도 이런 불확실성이 사라졌지만 한국 소비자와 기업들의 자신감은 살아나지 않고 있다. 월가도 불안하다. 미국의 경기회복이 여름부터 주춤해졌고 주식시장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미국 기업인들은 “미국경제가 한국경제처럼 침체국면으로 돌아설 것인가” 하고 묻고 있다. 한국경제가 회복된다면 월가에서도 미국경제에 대한 낙관론을 펴는 데 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월가는 한국경제가 계속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본다. 미국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왜 한국정부가 서둘러 보다 많은 경기진작수단을 쓰지 않는지 의아해하고 있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막대한 재정적자 부담이 없기 때문에 경기부양조치를 쓸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물론 한국정부는 소비와 투자촉진을 위해 많은 부양책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내수를 살리려면 보다 많은 부양조치가 필요하다. 국내 수요가 살아나지 않으면 한국은 올해 성장 목표치를 달성하기 어렵다. 최근 한국 국회가 일부 경기부양조치를 연기한 것에 대해 월가는 매우 실망하고 있다. 동원 가능한 모든 부양책을 쓴다 해도 한국의 내수가 살아날지는 확실하지 않다.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소비자들은 신용카드를 흥청망청 긁은 후 그 빚을 갚느라 정신이 없다. 지난 5월 말 현재 신용불량자가 370만명에 달했다. 신용불량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소비자들이 다시 지갑을 여는 데는 적지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높은 실업률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경제가 호전되더라도 기업들은 신규채용을 그리 늘리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의 노조가 너무 강한 탓에 기업은 장사가 안되더라도 근로자를 해고하기 어렵다. 그래서 임시직을 선호하는 기업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아예 중국 같은 저임금 국가로 송두리째 공장을 이전하기도 한다. 국내 상황과 지정학적 불확실성 때문에 기업은 투자를 꺼리고 있다. 금리상승 가능성뿐 아니라 가계부채, 기업-특히 중소기업-의 취약한 재무구조 등이 어우러져 투자확대를 가로막고 있다. 수출은 그나마 한국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ㆍ미국ㆍ일본 등에 대한 수출이 급증하고 있으며 전자ㆍ반도체ㆍ조선ㆍ자동차ㆍ석유화학업종의 수출이 활기를 띠고 있다. 한국정부는 지난해 말 올해 경상수지 흑자규모를 50억~60억달러로 예상했지만 최근에는 200억~250억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그러나 무역흑자는 줄어들 것이다. 특히 중국경제가 경착륙하면 한국의 수출은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중국의 경기과열이 진정되면서 연착륙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중국정부는 구두경고ㆍ행정조치 및 경제정책을 두루 활용하며 경기과열을 진정시키고 있다. 고유가도 한국경제의 또 다른 골칫거리다. 유가가 1달러 오를 때마다 한국의 성장률은 0.1%포인트 낮아지고 무역수지는 7억5,000만달러 줄어든다. 소비자물가는 0.15% 상승한다. 유가가 수급문제로 배럴당 40달러(WTI 기준)까지 오른 것은 아니다. 40달러 가운데 약 10~15달러는 중동 지역의 불안에서 비롯된 프리미엄이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투기세력의 매수 포지션이 매도 포지션보다 4배나 많다. 투기적 요인이 없다면 유가는 훨씬 낮아질 것이다. 앞으로 몇 년간 원유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유가는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아무도 유가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측할 수 없다. 지정학적 상황이 유가를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한국을 포함한 세계경제는 곤경에 처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중국과 미국을 포함한 세계경제 성장세가 크게 둔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에는 한국의 성장동력인 수출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국내 소비를 살리기 위해 추가적인 경기부양조치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볼 때 한국정부는 이런 경기진작조치를 쓸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다. /손성원 웰스파고은행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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