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1596년 한여름. 선박 한 척이 얼음에 갇혔다. 위치가 북위 74도 부근이었기 때문이다. 왜 요즘도 어려운 북극해의 거친 바다를 항해했을까. 교역로를 찾기 위해서다. 북해에서 북쪽으로 항해하면 아시아에 도달할 최단 항로를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기에 모험에 나섰다. ‘북동항로’로 불린 이 바닷길에 가장 공들인 나라는 네덜란드. 유럽 최강대국인 스페인의 압제에 맞서 독립전쟁을 벌이면서도 바다에 눈을 돌렸던 네덜란드는 끊임없이 북동항로를 찾는 배를 내보냈다. 선두주자는 무역선장 출신인 빌렘 바렌츠(Willem Barrents). 여름철이면 24시간 낮이 지속되는 ‘백야 현상’에 따라 북극해 어디인가에 얼지 않는 바다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1594년 1차 항해에서 이미 노바야젬라섬에 도달하고 주변 섬들을 발견해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었다. 이듬해 2차 항해에 실패하는 통에 한푼의 보조금도 받지 못했지만 굴하지 않고 1596년 3차 항해 길에 올랐다. 초반에는 순조로웠던 3차 항해에서 얼음에 갇히자 육지의 동토에 올라 배의 갑판을 뜯어 움막을 짓고 겨울을 보냈다. 식량이 떨어지면 북극여우와 곰을 사냥해 허기를 달래는 동안 선원 8명이 죽었다. 바다의 얼음이 녹아 배를 띄운 지 일주일 만인 1597년 6월20일, 쇠약해진 바렌츠 선장도 숨을 거뒀다. 47년 짧은 생을 보낸 바렌츠는 10유로짜리 동전의 주인공으로 여전히 살아 있다. 러시아 선박에 구조된 선원들이 그해 11월 돌아왔을 때 네덜란드는 감동에 젖었다. 위탁화물인 옷과 식량이 온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얼어죽고 굶어죽으면서도 화물만큼은 건드리지 않았던 냉엄한 도덕률. 생명보다 소중히 여겼던 명예의식과 상도의에서 17세기 네덜란드의 번영이 꽃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