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6월13일] <1421> 미란다 판결

‘징역형 각각 20년과 30년.’ 애리조나 법원이 멕시코계 미국인 에르네스토 미란다에게 유죄를 선언하며 내린 형벌이다. 죄목은 소녀 납치 및 성폭행. 미란다는 과연 진범이었을까. 그렇다는 게 정설이다. 미란다가 경찰에 체포된 시점은 22세 시절인 1963년 3월. 은행강도 혐의로 체포된 미란다는 변호사가 도착하기 전 두시간여의 경찰 심문에서 18세 소녀를 납치해 이틀간 감금하며 성폭행했다는 사실도 털어놓았다. 피해자도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미란다의 서명날인이 들어간 진술서와 목격자의 증언에도 불구하고 1966년 6월13일 연방대법원은 최종 공판에서 무죄 선고를 내렸다. 판결문에는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충분히 고지되지 않았으며 진술거부권도 보장 받지 못한 상태에서 작성된 진술서는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미란다 판결은 논란과 함께 새로운 수사관행을 낳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들었던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미란다 원칙’이 이때 만들어졌다. 미란다는 다른 증거가 드러나 새롭게 기소돼 11년형을 살던 중 1972년 가석방됐으나 1976년 술집에서 벌어진 싸움에서 칼에 찔려 죽었다. 살해 용의자는 아니러니하게도 미란다 원칙을 내세우며 묵비권을 행사한 끝에 무죄로 풀려났다. 범인들을 위한 합법적 탈출로라는 비난에도 미란다 원칙은 인권존중 사상과 함께 자유세계로 퍼졌다. 한국에서 비슷한 제도가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는지는 의문이다. 검찰이 마음만 먹으면 ‘포괄적’으로 죄인을 만들 수 있는 풍토니까.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조사할 때 ‘피조사 업체의 권리’를 알려주는 ‘경제 미란다 원칙’을 올 2월 도입했다. 제도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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