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설치작가 김수자, 10년만에 국내 개인전
| 김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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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서, 불속에서, 공기와 땅 속에서 본 것은 자연이지만 그것은 곧 우리 인간의 모습이기도 하죠. 모든 속성이 독립적이지만 서로 기대어 존재하고, 생로병사의 순환이 내재해 있습니다."
세계적인 설치작가 김수자(53ㆍ사진)가 9일 10년만의 국내 개인전 '지수화풍(Earth, Water, Fire and Air)' 개막식에 앞서 기자를 만나 꺼낸 얘기다.
그로 말할 것 같으면 전통천 이불보로 작업한 보따리(Bottari) 연작으로 유명한 '보따리작가'이다. 이불보라는 천은 잠자리에서 몸을 덮는 가장 내밀한 존재이며 귀한 물건을 감싸고 이사짐을 싸는 삶의 한 모습이다.
또다른 대표작인 '바늘여인(A Needle Woman)' 시리즈는 도심 복판에 등을 돌리고 선 작가 자신이 쓸려다니는 인파를 관통하는 '바늘' 그 자체가 된 영상작업으로 세계 미술계의 찬사를 받았다.
작가가 등장하던 기존작과 달리 신작은 자연 만을 보여준다.
"'보따리' 작업에도 눈이나 안개 풍경, 일출과 석양, 하늘과 땅의 관계를 360도 회전으로 보여주는 식의 자연이 있었는걸요. 바늘이 인간의 몸이라면 제가 작업하는 천은 자연이 확장된 삶의 터전이고, 거울은 성찰의 과정이죠. 그에 대한 탐구가 이번에는 자연에 관한 심층적인 질문으로 돌아온 겁니다."
전시는 5~9분짜리 영상물 7점으로 이뤄졌다. 빨갛게 달아오른 화산의 불덩어리는 시커먼 땅을 뚫고 나와서는 식어 바스러지기를 반복한다. 파도는 끊임없이 절벽에 몸을 던지며 자멸하는 역동성을 보여준다.
부서진 파도가 이뤄낸 무지개가 역설적이다. 꿈틀대는 화산이 공기 흐름을 자극해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도 장관이다. 자극적이지 않은 감동은 '주장(主張)없는 설득'에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란자로테 비엔날레의 초대를 받아 스페인 까나리 제도에 가서 '제가 발견해 낸' 자연의 모습과 소리들입니다. 지(地)수(水)화(火)라는 자연의 원소에, 에너지의 흐름(氣)이자 바람((風)으로 해석되는 순환과 역동의 에너지가 더해졌어요. 내가 발견한 자연의 유기성과 연기성을 분명히 해 주는 작업인 거죠."
그는 화산을 만나기 위해 3,000m 과테말라 산을 걸어서 올랐고 흐르는 용암의 바로 옆까지 다가가는 위험도 감수했다. 그렇게 수행자처럼 걷고 돌고 떠돌며 바라보다 발견한 것들이 작품에 담겼다. 이 처럼 논리보다는 직관이 앞서는 작가다.
"내 몸과 내적 에너지, 예술적 충동을 자연스럽게 따릅니다. 이불보에서 개인과 사회성을 찾고, 바늘 끝이 천에 닿는 순간 시간성과 장소성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지요.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면 어디서든 멈춰 서 작업을 합니다."
그 '깨우침의 순간'을 작품을 통해 관람객도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작가의 위대함이다. 그는 백남준 이후 최고의 한국작가로 꼽힌다.
지난해 수많은 비엔날레에 참여했으니 올해는 좀 쉬엄쉬엄 일하겠다는 그는 짧은 고국 방문 후 곧장 파리로 가 다큐멘터리 작업을 진행한다.
빌게이츠 재단에서 의뢰 받은 시애틀의 공공미술프로젝트 등 할 일이 적지 않다. 전시는 강남구 신사동의 아틀리에 에르메스에서 3월28일까지 열린다. (02)544-7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