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성군(聖君)과 현신(賢臣)’

당나라 현종(玄宗)은 한때 잘 나가던 성군(聖君)이었다. 말년에는 양귀비와 흥청망청 놀아나다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었지만 등극 초기에는 한휴(韓休) 등 충성스럽고 유능한 신하들을 등용해 국정에 힘썼다. 현종은 태종의 `정관(貞觀)의 치(治)`에 이어 `개원(開元)의 치(治)`라는 태평성세를 이끌어냈다. 현종은 신하들의 직언에 귀를 기울였다. 신하 중에서도 한휴는 현종이 잘못을 저지르면 면전에서 서슴없이 문제점을 지적했다. 현종이 한휴를 어렵게 여기자 환관들은 한휴를 내칠 것을 은근히 권유했다. 하지만 현종은 단호했다. 그는 “나는 말랐지만 천하는 살찌지 않았는가? 한휴가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해도 자리에 누워 천하를 생각하면 편안히 잠을 이룰 수 있다”면서 한휴를 계속 중용했다. 현종의 통치에서 알 수 있듯 현신(賢臣)이나 간신(奸臣)을 만드는 것은 군주 자신이다. 귀에 거슬리는 말을 외면하면 주위에는 간신만 들끓게 된다. 그 결과는 뻔하다. 국정은 엉망이 된다. 최근 정부 각 부처가 발표하는 정책을 보면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특히 재정경제부 등 경제부처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상속세 포괄주의 도입 등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곧 시행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물론 이러한 정책 중에는 실현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예산부족 등의 문제로 시행하기 어려운 것도 상당수다. 정부 관료들도 이를 모를 리 없지만 대통령 당선자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주문에 순응하는 모습이다. 정부 부처의 이러한 입장 선회는 대통령 당선자의 자세에서 비롯됐다. 노 당선자는 지난 11일 “정부 부처가 공약을 심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때부터 차기 정부의 공약을 평가하는 목소리는 쑥 들어간 반면 실천계획만 쏟아지고 있다. 노 당선자는 정부정책 결정과정에서 `토론문화`를 활성화하겠다고 강조했다. 토론문화가 꽃피우려면 주제에 대한 제약을 비롯해 그 어떤 금기(禁忌)도 없어야 한다. 활발한 토론을 벌이자고 해놓고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방향이나 주제를 강요한다면 토론 자체가 불가능하다. 공무원들은 흔히 `행정은 정치의 시녀`라고 말한다. 정치권에서 큰 방향이 결정되면 그 실천방안을 수립하는 것은 관료들의 몫이다. 하지만 방향을 정할 때 관료들의 목소리가 배제돼서는 곤란하다. 그들은 전문가다. 전문가의 의견이 빠진 정책은 제대로 뿌리내리기 어렵다. 순자는 신도(臣道)에서 `명령을 거스르고 군주를 이롭게 하는 것은 충성, 명령은 따르지만 군주를 이롭게 하지 못하는 것은 아첨`이라고 가르쳤다. 어떤 것을 택할지는 노 당선자에게 달려 있다. <정문재 경제부차장 timoth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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