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평양에 다녀왔습니다.’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1972년 7월4일 중대발표가 예고된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충격적인 발표로 온 국민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날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자신이 2개월 전 평양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 것이다.
1972년 5월2일 판문점을 거쳐 극비리에 적의 심장부 평양으로 들어간 이후락은 4일간 평양 모란봉 초대소에 머물면서 김일성과 두차례 만났다.
남한의 정보 최고 책임자였던 이후락의 평양 밀행은 일체의 대화를 배제한 채 치열한 대결과 반목으로 일관했던 남북관계에 있어 가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어 5월29일 북한에서는 박성철 제2부수상이 서울을 방문, 청와대로 박정희 대통령을 예방했다.
비밀리에 진행된 이후락ㆍ박성철의 평양ㆍ서울 방문과 이를 통해 이뤄진 양측간의 고위회담에서 합의된 내용은 역사적인 남북공동성명 발표라는 결실을 맺는다.
7ㆍ4 남북공동성명은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간 공동합의서로 남북이 대치 국면에서 협상과 대화의 시대로 이행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친지의 도움으로 현재 강남 인근에서 쓸쓸하게 노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후락은 평양 밀행에 앞서 유서를 썼으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 여차하면 자살할 결심으로 청산가리 캡슐을 소지한 채 김일성을 만났다고 회고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인해 최근 남북간은 물론이고 북한과 미국간의 관계가 아슬아슬하다.
양측은 서로 막말까지 해대며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대응하고 있다.
남북간 대화의 물꼬가 밀사들의 왕래에서 시작됐던 것처럼 북미간에도 밀사들의 활약에 힘입어 어느날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폐기에 전격 합의했다는 발표가 이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박민수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