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월요일. 활짝 갠 초봄의 아침. 아직 바람이 차가워 오가는 행인들은 모두 코트를 입고 있다. 어제는 일요일, 내일은 춘분 휴일, 즉 연휴의 한가운데다. 어떤 사람은 '오늘은 그냥 쉬고 싶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여러 사정상 당신은 쉴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신은 여느 때처럼 아침에 눈을 뜨고 세수를 한 다음 아침을 먹고 옷을 입고 역으로 간다. 그리고 늘 그렇듯 붐비는 전차를 타고 회사로 향한다. 여느 때와 조금도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딱히 다른 날과 구분할 필요도 없는 당신의 인생 속 하루에 지나지 않았다. 변장한 다섯 명의 남자가 그라인더로 뾰족하게 간 우산 끝으로, 묘한 액체가 든 비닐봉지를 콕 찌르기 전까지는… <'언더그라운드' 중에서> 1995년 3월 20일 오전 8시경 도쿄 시내를 통과하는 지하철 5개 차량에서 발생한 지하철 살인 사건이 옴진리교 교단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대형 테러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판명되면서 일본은 물론 전세계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충격적인 이 사건을 심층적으로 다룬 무라카미 하루키의 르포르타주(reportage) '언더그라운드'와 그 후속작 '약속된 장소에서-언더그라운드2'가 함께 출간됐다. 각각 사건 피해자와 옴진리교 신도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다듬어 실은 이 책들은 하루키 스스로 자신의 문학에 있어 전환점이라 부를 만큼 의미가 크다. 아무 예고 없이 닥친 재앙에 갑자기 노출된 보통 사람들과 평온과 안식을 얻기 위해 택한 종교생활에서 끝내 파멸을 맛보게 된 종교인들의 담담하지만 충격적인 고백이 깊은 울림을 준다. '언더그라운드'는 피해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 생활에 초점을 맞춰 사건이 일어난 시각 전까지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던 그날 아침의 풍경 속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약속된 장소에서'는 사건을 바라보는 반대편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이제껏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해왔던 '피해자=가해자'라는 단순한 도식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를 보여준다. 피해자를 전부 뭉뚱그려 하나의 존재로 볼 수 없듯 가해자 역시 개개의 인격과 사연을 지니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통해 새로운 관점에서 이 사건을 다시 만나는 기회를 제공한다. 각각 1997년과 1998년 펴낸 두 권의 책에서 하루키는 현대 사회의 윤리 문제, 선과 악을 구분하는 기준에 대한 화두를 던졌고 이 같은 의문은 지난 해부터 올해까지 3권으로 발표한 장편 소설 '1Q84'에 고스란히 투영됐다. 두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인 필력과 사회 현상의 이면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통해 1980년대 '하루키 신드롬'을 낳았던 저자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다. 각권 1만 8,000원, 1만 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