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의 땅에 애국가가 네 번이나 울려퍼질 때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가슴 뭉클했습니다."
한연희(47ㆍ사진) 골프국가대표팀 감독은 도하아시안게임 종반 골프에 걸린 남녀 개인ㆍ단체전 금메달 4개를 모두 휘쓸었던 지난 12월11일의 감격이 가시지 않은 듯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요즘도 선잠을 잘 때면 '금메달 따야지' 하는 생각으로 가끔 놀란다는 말에서 대회 준비 기간 지속된 극도의 마음고생이 느껴졌다.
프로출신… 2004년에 지휘봉 잡아
말보다 선수들과 함께하는 실천파
"도하에 네번 울린 애국가 가슴 뭉클
세계 호령할 꿈나무 육성에 힘쓸것"
한 감독은 프로골퍼 출신이다. 지난 88년 최광수, 신용진 등과 함께 프로테스트에 합격했지만 선수로서의 길은 화려하지 않았다. 6년여 동안 활동했으나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던 청운의 꿈은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았고 대신 허리 부상이라는 시련이 닥쳐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다.
이후 연습장 사업에도 손을 대봤지만 "돈 버는 일보다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후배인 박노석부터 국가대표를 지낸 서종현, 김대섭 등 그의 지도를 받은 골프선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지난 99년부터 교습가의 길로 방향을 굳힌 그는 아시안게임을 2년 앞둔 2004년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아시안게임에 앞서 지난해 11월 남아공에서 열린 '골프올림픽' 격의 세계골프팀선수권 5위라는 역대 최고성적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의 지도력은 어떻게 다를까. 우선 그는 말로 가르치기보다는 선수와 함께 하는 실천파다. "대표팀 합숙과 국내외 대회 출전으로 2년 동안 연간 200일 이상을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그는 "어린 선수들일수록 지도자가 곁에 있고 없고는 마음가짐이 천양지차인 만큼 엄한 선생인 동시에 때론 삼촌처럼, 친구처럼 늘 동행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최초의 경기인(프로골퍼) 출신 감독인 그는 선수의 마음을 읽을 줄 안다. "최고 전력으로 평가 받은 남자선수에게는 우쭐하지 않도록 강조했고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에 의기소침해 있던 여자선수에게는 할 수 있다는 말을 100번도 넘게 해줬습니다. 어떤 분야라도 겸손과 자신감이 조화를 이루도록 북돋우는 게 최고의 교육이라고 믿습니다."
이와 함께 "묵묵히 잘 따라준 선수들이 자랑스럽고 고마울 뿐"이라며 공을 선수에게 돌리는 것도 그의 특징이다. "좋은 재목을 만난 행운 덕"이라고 겸손을 잊지 않았지만 그가 감독을 맡은 이후 김경태(21)와 강성훈(20ㆍ이상 연세대)이 프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선수들의 기량과 심리가 부쩍 좋아졌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내년 감독직에서 물러날 예정인 그는 제대로 된 시설과 체계를 갖춘 골프아카데미 설립을 꿈꾸고 있다. "비(非)경기인 프로골퍼들도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성공적인 모델을 선보이고 싶다"며 "아마추어 골프를 세계 정상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해외 프로무대를 호령할 꿈나무를 발굴, 육성하는 일에 힘쓸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