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발언대] 길러진 대학생들

최근 대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겨울방학 인턴 면접을 본 적이 있다. 서울 유수의 한정된 대학을 대상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지원했다. 영문으로 된 이력서들을 보면서 참으로 예전과 세상이 많이 바뀌었음을 느꼈다. 이력서 상에서 느껴지는 자질은 모두 만능인 것처럼 보였다. 토익 900점 이상에다 어학연수ㆍ교환학생은 기본이요, 국내 인턴 경험에 일부는 해외 유수회사 인턴 경험이 있었다. 또한 바이올린ㆍ플룻 등 악기 연주, 축구ㆍ마라톤 등 운동, 여기에 외국어 토론 클럽, 모의투자 클럽 등 실용적인 동아리 활동까지… 이것이 소위 한국 유명 대학의 잘 나가는 학생들의 평균 프로필 수준이다. 참으로 영어유치원에서부터 대학 3학년까지 잘 길러졌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학생들을 면접 본다는 것은 오히려 나를 흥분시키기까지 했는데 면접을 보는 순간 내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다. 길러진 학생들은 길러진 그 익숙한 환경에는 모범답안을 잘 쏟아냈지만 조금이라도 비틀고 달라진 환경에는 주저하고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자신의 주관도, 논리의 일관성도, 문제해결 능력도, 사회를 보는 식견도 없는 것으로 보였다. 내가 대학을 다녔던 지난 1990년대 초반에는 데모에도 참가하고, 몸을 부딪치며 운동도 하고, 우리나라 정치를 고민하며 토론도 하고 술도 먹었다. 비록 영어도 못하고, 어학연수도 가지 못했지만 세상을 보는 안목과 생존할 수 있는 근성을 배울 수 있었는데 요즘 학생들은 3학년인데도 여전히 길러져가고 있다. 누구의 책임 때문이라고 탓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그런 학생들에게 그들이 생애 처음 맞는 면접(비록 인턴 면접이지만)에서 세상이 무섭다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에게 뭐가 부족한지를 처절히 깨닫게 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래의 말로 인터뷰를 마감했다. “아직 1년이 더 남아있으니 종교ㆍ철학ㆍ심리학 같은 기초학문을 꼭 들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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