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점심 나눠먹기에 대한 추억

기자의 고향은 ‘깡촌’이었다. 그것도 오지에 가까운 섬이었다. 초등학교 때 일년에 서너 차례 구호용 건빵까지 나눠줬을 정도였다. 훗날 자칭 ‘촌놈’이라는 또래들에게 같은 경험이 있었는지 물어보면 “전쟁통도 아닌데 학교에서 건빵 배급해주는 데가 어딨느냐”는 타박만 돌아왔다. 하지만 평소 학교에 나오지 않던 아이들이 건빵 나눠주는 날만 보자기 하나 달랑 들고 나타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섬마을이더라도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오후 수업을 했다. 점심을 싸오지 못하는 몇몇 아이들이 문제였다. 집에 보리쌀마저 떨어져서가 아니라 양은도시락이 없어 밥 그릇과 반찬 그릇을 주섬주섬 싸오기 창피했기 때문인 것으로 기억한다. 어떤 아이는 굶었다. 어떤 아이는 집까지 왕복 1시간30분이나 되는 길을 허겁지겁 뛰어가 점심을 먹고 왔다. 그러다 어떤 아이가 밥을 갹출해 나눠먹자고 제안했다. 공동체 정신을 발휘하자는 대의명분 앞에 반대할 용기있는 아이는 없었다. 곰팡내 나는 기억을 늘어놓은 이유는 최근 정치권이나 정부 정책이 촌 아이들 도시락 나눠 먹기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정부는 2단계 국가균형발전 종합계획을 내놓으면서 지방소재 기업의 법인세를 깎아주겠다고 한다. 취지는 좋은데 조세형평주의 저해나 재정부담 증가, 효율성 저하에 대한 대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성장에 대한 고민 없는 균형발전론은 공허한 감상론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등 대선 후보들은 신혼부부 12만쌍에 주택 임대ㆍ분양, 신혼부부와 출산가정에 최대 2억원까지 저리 대출 등 환심성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혜택을 줬으니 누군가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있다. 참여정부가 이름도 거창한 ‘참여복지’를 내세웠지만 계층간 갈등의 골만 깊어진 것을 연상하게 한다. ‘고용 없는 저성장’에 발목을 잡혀 복지지출 확대는 조세 및 사회보험료 증가, 재정적자 급증, 소비 침체 등으로 이어지고 있지 않는가. 참고로 앞서 얘기했던 미담은 오래가지 못했다. 무엇인가 착한 일을 한다는 허위의식도 한순간이었다. 밥의 총량은 정해졌는데 촌 아이들은 쇠라도 삶아 먹을 정도로 항상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가 볼멘소리를 하는 순간 밥을 덜어가던 아이는 “안 먹어” 하고 선언했다. 판은 순식간에 깨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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