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IPTV, 이명박·박근혜 나서야
양정록 jryang@sed.co.kr
대중문화의 전성기였던 지난 70년대와 80년대 TV 채널은 5개 안팎이었고 TV 쇼 역시 몇 개 되지 않았다.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진 곡들만 반복해서 들려주고는 했다. 단지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소수만이 새 음반을 구입해 들을 수 있었다. 누구나 극장에서 동일한 여름특선 대작을 봤고 똑같은 신문과 방송을 통해 뉴스를 접했다.
하지만 하나로 모두를 만족시키는 시대는 지났다. 많이 팔리는 20%의 핵심상품이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는 ‘파레토법칙’은 변방의 다수(80%)가 더 큰 가치를 창출한다는 ‘롱테일법칙’으로 급속히 대체되고 있다. TV 채널은 수백개로 늘어났고 사용자제작콘텐츠(UCCㆍUser Created Contents)는 대세로 굳어져 주류 매체들을 위협하고 있다.
21세기 경제학의 비밀은 이베이나 월마트ㆍ다음ㆍ이마트 등 기업들의 서버에 저장돼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거의 무한한 저장 공간을 갖고 있는 인터넷이 바꿔놓은 변화다.
하지만 인터넷TV(IPTV) 문제는 이런 흐름을 타지 못한 채 2년여간 공전만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7월 정부 차원에서 합의점을 찾겠다며 국무총리실 산하에 방송통신융합추진위가 신설됐지만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간의 견해 차를 좁히지 못해 결국 공은 국회 방송통신특위로 넘어간 상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안은 어딜 가더라도 마찬가지다. 정치권에서도 여야는 물론 해당 상임위원회마다 이견이 첨예하다. 여의도 일각에서는 IPTV에는 방송ㆍ통신 업계간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이해관계가 너무 얽혀 있어 정부가 바라는 오는 6월 법제화는 차치하고 연내 처리도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번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 질의에서도 이런 우려가 잘 드러나 있다. 이날도 여야는 방통 융합 법제화와 관련해 평행선을 달렸다. 정부와 여당은 방통융합기구 설치법을 먼저 결정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IPTV 법제화를 먼저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자칫 기구 설치가 먼저냐, 아니면 IPTV 상용화가 먼저냐를 놓고 논란만 벌이다 대선 정국을 맞아 방통 융합 논의가 잠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다.
조창현 방송위원장과 노준형 정보통신부 장관은 논의의 출발점인 IPTV 서비스 성격을 각각 ‘방송’과 ‘통신’으로 주장하는 등 주요 핵심 쟁점마다 현격한 입장 차를 보이고 있다. 이런 마당에 정부가 기구설치법 처리 후 IPTV 법제화 추진을 고수할 경우, 연내에 IPTV 법제화는 요원한 것 같다. 이는 결국 우리 산업계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손실이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 삼선을 선택하면 된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지만 정통부의 ‘광대역융합서비스사업(BCS)법’과 방송위의 ‘방송법 개정안’의 단일화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현실성이 있는 것은 ‘선 IPTV 도입, 후 기구설치법 처리’다. 열린우리당은 ‘IPTV 우선 도입’을, 한나라당은 ‘당론에 따른 각 당의 절충법안을 통합 심사해 동시 처리하자’는 쪽으로 각각 가닥을 잡고 있기 때문에 이 시나리오는 어느 정도 타협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실제 이 경우 BCS법과 방송법 개정안의 조정과 관계없이 이에 대한 법안심리만 빨리 이뤄진다면 IPTV를 우선 상용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선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 정부의 임기 내에, 규제기관ㆍ산업계 등의 이해관계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방통융합 입법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는 당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여권의 분당 사태로 입법의 키는 원내 1당이 된 한나라당이 잡고 있어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대표 등 한나라당의 두 대선 주자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범여권 후보는 아직 형성되지 않고 있는 만큼 두 사람이 이 문제를 공론화해 적어도 IPTV 도입에 대한 물꼬를 터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일부 의원이 의원입법을 통해 IPTV 도입을 앞당기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등 분위기도 어느 정도 조성돼 있다.
특히 한나라당의 경우 당 특위를 통해 기구 개편과 IPTV 도입 방안 등에 대한 의견 조율이 진행되고 있고 이달 말 당 차원의 정책 방안이 도출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까지 IPTV 법제화에 대한 한나라당의 의지가 주목된 만큼 이 기회에 대선주자들이 직접 나서 이 문제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다면 제대로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시간에 쫓겨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한다거나 졸속으로 처리하면 아니한 것보다 못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는 만큼 여야가 충분한 논의를 통해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최적의 해법을 찾는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권이 산업계 신성장동력의 발목을 잡는 일이 더 이상 생겨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의 결단을 기대해본다.
입력시간 : 2007/04/23 1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