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6월3일 오후4시8분, 일본 나가사키현 운젠(雲仙). 7개월째 연기를 내뿜던 후겐타케 봉우리가 거대한 폭발과 함께 용암을 토해냈다.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1934년)될 만큼 빼어난 경관과 수많은 온천을 자랑하는 운젠 지역에서 화산활동이 시작된 것은 기록상으로 701년부터. 1792년에는 1만5,000여명이 사망하는 참사도 빚었기에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한 1990년 말부터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육상자위대가 동원돼 주민 2만여명을 신속하게 대피시켰지만 시속 100㎞의 속도로 쏟아진 용암은 모든 것을 삼켰다. 재산 피해 2,300억원에 사망 43명.
주목할 만한 대목은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집단이 언론이라는 사실. 16명이 취재ㆍ사진기자들이 보다 생생한 기사 한 줄, 한 장의 사진 컷을 위해 끓는 용암 속으로 사라져갔다. 2005년에는 운젠의 산 속에서 기자들의 최후가 담긴 영상이 발견돼 ‘봉인 풀린 운젠 화산 378초의 유언’이라는 타이틀로 전파를 탔다.
열정이 용암을 이겨냈기 때문일까. 용암 분출이 약해지더니 1995년부터는 화산의 연기마저 멈췄다. 드릴로 땅을 뚫어 용암을 채취한 사상 초유의 실험(2003년)에서 운젠 지하 용암의 온도는 섭씨155도로 예상했던 500도보다 훨씬 낮았다. 화산폭발 위험이 그만큼 적어졌다는 얘기다.
운젠 화산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본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 3만4,100달러인 일본이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뛰는 데 걸린 시간은 단 5년. 한국은 10년 만인 2007년 2만달러선을 넘었으나 다시금 1만달러대로 추락한 상태다. 용암마저 넘었던 일본 기자들과 같은 열정이 우리에게 있을까. 운젠 화산 소식을 들었을 때의 감동과 맹세는 어디로 갔는지….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