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시스템 리스크' 갇힌 금융당국

KB·신한 사태 이어 현대건설 MOU 혼란까지…<br>"잘못 개입했다간 관치 역풍"<br>자율 순환 강조 하다가 시스템 붕괴 역효과 우려<br>"시장 방임 제어 필요" 지적


외환은행이 국회의 '날치기'를 연상하게 하듯 전격적으로 현대건설 매각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지난 11월28일. 금융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환란 이후 수많은 구조조정을 해왔고 이를 통해 선진국 못지않은 시스템의 베스트프랙티스(모범규준)를 만들었다고 자부했건만 정작 시장에서는 여전히 후진적 그림이 되풀이되는 데 따른 탄식이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당국이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도 없는 일. 시장의 힘이 커지는 바람에 섣불리 끼어들었다가 관치의 역풍을 맞을 것이 뻔한 탓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이른바 '시스템 리스크'에 갇힌 셈이다. 진동수(사진) 금융위원장은 치밀한 일 처리를 강조한다. 법을 전공해 정책의 법률적 미비점까지 꼼꼼하게 지적한다. 시장에 대해서는 최대한 자율을 주되 그에 맞는 시스템을 구축해주는 것이 당국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금융산업 중장기 선진화 방안과 이를 토대로 법제화를 진행 중인 지배구조개선법과 금융소비자보호법 등도 시스템을 만들어주기 위한 차원이었다. 하지만 정작 시장은 그의 의도와는 딴판으로 움직였다. KB사태 때는 시장의 욕심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채 사태를 키웠고 관치의 화살만 맞고 말았다. 취임 직후부터 강조한 사외이사 역할론은 사태가 터졌을 때 실상 거의 기능을 하지 못했다. 신한금융지주 사태도 마찬가지였다. 진 위원장이 사외이사와 함께 강조한 부분이 이른바 '대리인 제도'의 문제점이었다. 라응찬 전 신한지주 회장 등 금융회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이 오너 행세를 하면서 장기간 연임을 이어가고 있는 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라 전 회장이 연임을 결정할 당시 당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결국에는 지배구조에 치명적인 치부를 드러내고 말았다. 진 위원장 본인이 강조했던 시스템을 통한 시장의 자율적 순환이 연이어 구멍을 드러낸 셈이다. 현대건설 문제도 본질은 비슷하다. 당국은 금융회사나 기업구조조정에 유달리 개입을 자제해왔다. 현대건설 MOU건에 대해서는 '사인(私人) 간의 계약'이란 명분을 내세우면서 자율적 해결을 기대했다. 잘못 개입했다가 어느 한쪽의 편을 든다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라면서 '투명한 해결'이라는 원론만을 강조했다. 하지만 결국 구조조정의 시스템은 완전히 망가졌다.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에 참여했던 금융계 인사는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이 정형화한 구조조정 매뉴얼과 시스템이었다"며 "하지만 현대그룹의 재무약정 거부와 현대건설 MOU 파행은 그런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당국과 금융권 인사들은 연이은 시스템의 문제 원인 중 하나로 당국의 정교한 기술 부족과 어정쩡한 개입을 지적한다. 시장의 환경이 환란 직후와는 확연하게 변했다는 당국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만 개입할 때와 그렇지 못할 때를 확실하게 구분하지 못하면서 시장의 방임만을 키웠다는 얘기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관료 조직인 금융위와 반관반민인 금융감독원 간의 역할 분담이 확실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시스템 결함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라며 "현대건설 문제의 경우 시스템으로 안되면 고위당국자의 '입'을 통해서라도 시장의 방임을 조기에 제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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