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로 설비투자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소비둔화 가속으로 내수가 위축된데다 전세계 경기침체로 수출 증가율이 둔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기업들이 투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환율상승은 기업들의 자본재 수입 부담을 늘려 가뜩이나 쪼그라든 투자를 더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이 같은 3중고로 기업 설비투자가 내년까지 저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설비투자 둔화세 역력=현재 기업들은 실물경제 침체가 가시화되면서 추가 투자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전년 동기 대비 설비투자 증가율은 지난 7월 9.9%에서 8월 1.6%로 내려앉았다.
설비투자지표인 기계류 내수 출하 증가율도 이 기간 7.2%에서 2.3%로 둔화됐고 내수용 자본재 수입 증가율도 18.9%에서 9.4%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특히 선행지표인 국내기계수주는 7월 20.7% 증가에서 8월 1.7% 감소로 반전돼 당분간 설비투자 부진을 예고했다.
한은이 2,154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해 최근 발표한 ‘기업경기조사 결과’를 보면 설비투자 실사지수(BSI)는 8월 99에서 9월 96으로 떨어졌다. 이 수치가 100을 밑돈다는 것은 당초 계획보다 투자를 늘리겠다는 업체의 수보다 투자를 줄이겠다는 업체 수가 더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2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이명박 정부 출범에 맞춰 600대 기업의 설비투자 계획을 조사한 결과 대기업들이 올해 설비투자를 14.0% 늘릴 것으로 전망됐지만 메가톤급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당초 계획대로 투자를 집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대기업은 나은 편이다. 대다수 중소기업들의 경우 경기둔화로 채산성이 악화되는데다 은행들이 대출마저 꺼리면서 신규 투자는 꿈도 꾸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환율상승으로 키코 등 파생상품 관련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 증가액은 올 상반기 매달 5조~6조원을 웃돌았으나 8월 들어 1조원대로 급감했다.
◇환율급등이 투자확대에 치명타=또 하나의 위협요인은 최근의 환율폭등이다. 투자에서 수입자본재 비중이 절반을 넘어선 상황에서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 자본재 수입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물가(원화 기준)는 전달 대비 2.3% 오른 반면 자본재는 8.2%나 폭등했다. 환율상승이 소비재(6.0%), 중간재(5.3%) 등보다 자본재 수입 가격을 더 높이고 있는 셈이다.
또 환율상승은 내수기업의 인건비 상승, 물가상승으로 인한 실질소득 감소 등으로 이어진다. 기업으로서는 그만큼 설비투자를 제약하는 요인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원ㆍ달러 환율 상승률과 설비투자 증가율의 상관관계는 -0.67을 기록했다. 환율이 상승하면 설비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세계경제 둔화에다 내수침체ㆍ환율상승 등의 악재가 쌓이면서 올해는 물론 내년까지 설비투자 침체가 예상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설비투자 상승률은 2007년 7.6%에서 올해 1.5%(상반기 1.0%, 하반기 1.9%), 내년 2.0%로 둔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실물경제 침체를 막기 위한 이명박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지가 관건이다. 황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정부의 투자활성화정책 등에 힘입어 내년에는 연간 2.7%의 완만한 증가세가 예상된다”며 “하지만 선진국들의 경험을 보면 단기적으로 큰 폭의 투자증가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