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6월 9일] 나로호에 담긴 꿈과 희망

SetSectionName(); [기고/6월 9일] 나로호에 담긴 꿈과 희망 이소연(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

대한민국 최초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가 남아메리카의 기아나 쿠루기지에서 발사되던 지난 1992년 8월11일. 연일 TV 뉴스와 신문에는 우리별 발사 소식과 함께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들의 인터뷰가 보도됐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저 '우리나라도 인공위성을 발사하나 보다' 정도로 지나쳤지만 당시 초등학생이던 동생은 TV가 뚫어져라 집중했다. 그러더니 '인공위성을 만드는 박사가 돼야겠다'며 꿈을 바꿨다. 인공위성을 만든 연구원들이 어느 학교에서 무엇을 전공했는지를 시작으로 질문공세가 계속됐다. '우리별'이 우주기술 발전 밑바탕 당시 KAIST에 다니던 나는 동생을 보며 그저 어린아이의 멋모른 호기심으로만 여겼다. 이후 동생은 KAIST에 견학 와 인공위성 센터에서 나름 조사를 한 후 "전자공학 전공이 가장 많았다"면서 "KAIST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해야겠다"고 했다. 지금 동생은 KAIST 전자공학 박사과정에 있다. 물론 인공위성이 아닌 다른 연구를 하고 있지만 동생을 여기까지 이끈 원동력 중 하나가 어릴 적 TV 속의 '우리별'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여름 나로호 발사 중계를 위해 전라남도 고흥군에 갔을 때 길을 가득 메운 차들, 그리고 안에 타고 있던 많은 학생들이 기억난다. 주변 해수욕장을 가득 메운 아이들은 최초로 발사될 로켓을 보기 위해 수시간을 달려 그곳으로 왔고 손에는 태극기를 들었다. 멀리 다른 나라에서 개발돼 발사됐던 우리별 1호를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나와 동생에 비하면 정말 가까이에서 실제적으로 체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부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들의 꿈을 실은 로켓은 하얀 연기를 뿜으며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날아갔고 지켜보던 우리 모두는 소리를 지르며 뛰었다. 비록 위성이 제 궤도에 안착하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땅에서 하늘을 가르며 우주로 날아갔던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로켓 나로호는 적어도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만큼은 부족함이 없었다. 우주기술뿐 아니라 많은 분야에서 100% 한 나라의 기술로만 성사시키기가 쉽지 않다.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많은 초보 나라들이 다른 나라와 협력해 그 분야에 입문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면에서 내가 비행할 때와 마찬가지로 나로호의 경우도 아쉬움은 많다. 100% 우리나라 과학자들이 만든 로켓이 아닌 러시아에서 들여와 의존한 부분이 상당한 것에 서운함을 내보이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 우리의 기술로 만들 수 있을 그날을 위해 준비하고 연습하는 과정의 일부인 만큼 지금의 나로호 발사를 위해 몇 년 동안 밤잠 설치며 로켓만을 바라보고 기다린 과학자들의 노력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오는 7월24일 프랑스에서 발사 예정인 '천리안 위성(통신해양기상위성)'은 전세계 처음으로 정지궤도상에서 해양 관측을 하게 된다고 한다. 천리안 위성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위성기술의 발전사에 과거 외국 기술과 공동으로 개발됐던 우리별이 든든한 바탕이 됐듯 나로호가 미래 우리나라 우주 로켓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현재의 아쉬움은 미래 대한민국의 우주기술을 선도할 젊은이들이 꿈을 갖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기술로 도약할 그날을 위해 언젠가 강연이 끝났을 때 손을 번쩍 들어 "박사님! 이번에 러시아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가셨지만 나중에 제가 과학자가 돼 우주선을 만들 테니 그때 그것을 타고 다시 한번 우주에 가주세요" 라고 말하던 초등학생이 떠오른다.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우주로켓이 아닌 러시아의 우주로켓을 탄 것에 서운한 마음을 가질 때 그 어린 친구는 꿈을 키웠던 것이다. 그들의 꿈이 될 나로호가 곧 하늘을 향해 다시 한번 날아갈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 오른다. 혼자 웃는 김대리~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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