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투자은행(IB)들이 내년도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한 달 만에 4%대 초반에서 2%대 중반으로 크게 내린 것은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국제 금융위기의 파고가 예상보다 빠르고 강력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특히 1%대 전망치가 상당 부분 나왔다는 것은 사실상 한국경제가 내년도 성장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악화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국경제 내년도 ‘벼랑 끝’ 성장하나=지난 10월 말 내놓은 해외 IB들의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비관을 넘어 가히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9개 해외 IB들은 9월 말 평균 4.2%의 전망치를 내놓았으나 10월 말 2.6%로 대폭 하향조정했다. 불과 한 달 만에 1.6%포인트나 내려잡은 것이다. 한 달 전만해도 4%대 성장 전망이 꽤 있었으나 10월 들어서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골드만삭스와 스탠다드차타드의 3.9% 전망치가 가장 높았고 모건스탠리는 3.8%로 종전 5.0%에서 크게 뒷걸음질쳤다. JP모건은 4.7%에서 3.0%로 무려 1.7%포인트나 낮췄다. 문제는 그 다음 전망치 수준이 2% 초반 이하로 뚝 떨어진다는 것이다. 씨티그룹이 3.4%에서 2.2%로 하향조정하며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의 전망치(2.2%)와 보조를 맞췄다. 특히 도이치뱅크와 메릴린치ㆍUBS는 나란히 1%대 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하며 충격을 주고 있다. 도이치뱅크(3.5%→1.7%)와 메릴린치(3.8%→1.5%)는 종전 전망치의 절반 수준으로 조정했고 UBS(3.5%→1.1%)는 3분의1 수준으로 크게 내렸다. 해외 IB 전망처럼 국내 경제 성장률이 2%대를 기록한다면 이는 1998년(-6.9%) 이후 1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해외 IB, 돌연 하향조정 왜=그동안 국내외 기관의 내년도 전망치는 3%대 중반이 대다수였다. 삼성경제연구소와 LG경제연구원이 각각 3.5%를 제시했고 금융연구원은 3.4%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3.4%로 내다봤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3%대는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2%대 전망치는 무디스가 유일했고 1%대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해외 IB들은 한 달 만에 급속도로 비관 모드로 바뀌었다. 국제 금융불안과 세계 경기침체로 한국경제가 수출둔화 및 내수부진의 동반 악화로 심대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다. 메릴린치는 “국내 은행의 단기외채에 따른 의존 심화도가 아시아 지역의 여타 국가보다 높아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피해가 더욱 크다”면서 “세계 경기침체 및 상업은행들의 디레버리징 여파로 한국경제 성장률이 크게 낮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UBS는 세계 경기둔화가 눈에 띄게 심각해짐에 따라 한국의 수출 둔화세가 예상되고 실업률 증대, 가계소득 감소 등으로 내수도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심지어 바클레이즈캐피탈은 수출둔화가 본격화되면서 내년도 1ㆍ4분기 성장률이 0%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글로벌 경기도 내리막길 질주=해외 IB들은 내년 글로벌 경제의 경기후퇴(recession)를 기정사실로 전망하고 있다. 9월 말까지만해도 주요국들은 적어도 플러스 성장은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금융시장의 검은 10월’을 맛본 뒤 일제히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치를 대폭 수정했다. 10월 말 현재 미국의 경우 11개사 해외 IB들의 경제성장률 전망치 평균은 -0.6%로 집계됐다. 9월 말의 1.2% 성장에 비해 크게 후퇴한 것이다. 바클레이즈캐피탈만 0.0%를 예견했을 뿐 메릴린치(-1.8%) 등 나머지 10개사는 모두 마이너스 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했다. 유럽 역시 한달 전인 0.7% 성장에서 -0.2%로 성장률 전망치가 바뀌었다. 도이치뱅크는 -1.4%를 내놨고 UBS는 -0.9%로 추정했다. 해외 IB들은 일본과 중국의 전망치도 하향조정했다. 일본은 지난달만해도 0.9%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10월 말 현재 0.0%로 낮춰졌고 중국은 9.0% 성장에서 8.4% 성장으로 변경됐다. 중국의 성장률이 한자릿수를 기록한다면 2002년(9.1%) 이후 7년 만에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