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라면 모를까 은행에서 대출받을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아무리 이자가 싸도 언젠가는 갚아야 할 돈 아닙니까. 당분간 어렵더라도 빚을 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은행 대출은 전혀 할 필요가 없지만 은행과 관계를 유지키 위해 1~2달 정도 잠깐씩 200만원 정도 대출을 받기도 합니다.대전에서 극미세공구를 개발하는 벤처기업과 서울 구로동에서 통신장비를 생산하는 업체 사장의 말이다. 둘다 부채율이 거의 0%에 가깝다.
지난해부터 중소기업에서는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 조금씩 벌어지고 있다.
은행에서 빚을 얻지 않는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는 곳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은행에서는 우수한 벤처기업을 찾아다니며 제발 돈을 빌려가라고 하소연 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금융기관에 자금이 몰리고 있고 마땅한 투자처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업의 차입에 대한 의존도가 지금 그 어느때보다 낮다는 것이다.
불황과 구조조정이라는 시장의 흐름이 기업 재무구조의 변신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코스닥에서는 회사채나 전환사채(CB)를 조기에 상환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경향은 지표상으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실제로 벤처기업의 투자유치액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지난 8월 중기청에서 실시한 벤처기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벤처기업 확인업체들의 자기 자본금은 99년 15억원에서 지난해 23억원으로 증가했고 올해는 38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불과 2년새 자본금 규모가 두배 이상으로 뛴 것이다.
대부분 자기자본 보다는 외부 투자유치를 통한 증가다.
자금확보 계획역시 차입보다는 증자나 투자를 훨씬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만개 기업중 금융기관이나 개인에게 돈을 빌리겠다는 경우는 전체의 12%에 불과하고 절반이 훨씬 넘는 5,500개 기업이 벤처캐피털로부터의 투자나 증시 상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직까지 이러한 흐름이 대세를 이룬 것은 아니다. 아직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대출에 의존하고 있는 벤처기업이 월등히 많은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차입에서 투자유치로 변해가는 추세는 분명하다.
"벤처의 등장으로 인한 가장 큰 효과는 차입경영에서 자본 경영으로의 전환이다. 우리 경제에서 이런 적은 없었다. 그만큼 벤처의 등장은 획기적인 것이다" 동원창투 김주원 사장의 말처럼 벤처는 왜곡된 국내 기업의 재무구조를 바로잡을 수 있는 촉진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송영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