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기 둔화조짐에 달러 독주 '주춤'미국 경제의 연착륙(소프트랜딩)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국제 외환시장에서 한참동안 지속됐던 「달러 독주」현상이 주춤해졌다.
경기 둔화 조짐이 불거지면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금리 인상정책이 마무리된 것 아니냐는 전망이 제기되자, 투자자들 사이에서 달러화의 매력이 빛을 잃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외환 투자가들은 미국보다 경제 성장 및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은 유럽으로 다시 눈을 돌리기 시작, 유로화가 모처럼 힘을 얻기 시작했다.
지난 2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가치는 한때 1유로당 0.9468달러까지 하락, 0.95달러 붕괴를 눈앞에 두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달러화 가치는 지난 2주동안 유로화에 대해 5%가량 절하된 것으로 집계됐다. 달러화는 엔화에 대해서도 소폭의 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주 한때 달러당 109엔대를 돌파했던 엔·달러환율은 5일 도쿄 외환시장에선 107.82엔으로 장을 열어 108엔을 조금 웃도는 선으로 하락했다.
한달 전까지만 해도 외환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던 달러화가 힘을 잃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2일 미국의 실업률 발표. 4.1%라는 비교적 높은 실업률이 미국 경제 둔화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면서, FRB가 오는 28일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추가 인상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전문가들 사이에 급속도로 확산됐기 때문이다.
내리막길에 다다른 달러화와는 달리, 유로화와 엔화에는 상승의 여지가 있다. 유로권 11개국은 올해 약 3.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면서 10년만에 최대 호황을 누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오는 8일에는 유럽중앙은행(ECB)이 0.25%포인트의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어, 미국과의 금리 격차가 좁혀지면서 유로화 상승 추세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노무라 증권의 외환담당 도야하라 다카시는 『지금 외환시장의 중심 통화는 유로화』라며, 조만간 1유로당 0.96달러선을 돌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일본은 오는 9일 발표될 예정인 1·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0~2.5%에 달할 것으로 예상돼, 경기 회복세가 엔화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뉴욕 소재 금융서비스업체인 포티스의 마크 솜 부사장은 엔화가 달러당 106.5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는 단기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시장에는 이같은 달러 약세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 아직은 미국경제가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우위에 있는 만큼, 앞으로 경기 둔화가 장기적인 추세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달러화의 위상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냇웨스트 글로벌 파이낸셜 마켓의 수석 경제학자인 램 바가바툴라는 최근의 추세가 단순한 조정국면에 지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신경립기자KLSIN@SED.CO.KR
입력시간 2000/06/05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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