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총선겨냥 '집단이기' 경제가 멍든다

선거를 틈타 집단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도 크게 후퇴해 선거 후 경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정부는 저물가, 저금리, 안정적인 경제성장과 120억달러 경상수지 흑자규모 등을 올해 경제정책목표로 내세우고 있으나 선거를 앞두고 각종 선심성 정책이 남발돼 안정적인 성장기조가 선거 후에도 이어질지 전문가들이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선거철에 접어들면서 노동·의료 등 사회 각 분야에서의 「제몫찾기」가 확산되는가 하면 과소비 풍조 또한 재연되고 있어 경제안정기조에 위협요인으로 대두하고 있다. 연구기관 등 전문가들은 현재의 경제상황을 「과열이 우려되는 시기」라고 판단하고 정부에 선제적인 경기진정책을 주문하고 있으나 정부는 과열을 우려할 만한 단계가 아니라며 낙관론을 펴고 있다. 특히 금융 부문의 부실이 재연돼 구조조정이 시급한 상황인데도 고통이 수반되는 과제들은 일단 선거 뒤로 미루고 있는 분위기여서 경제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거시지표 불안=정부의 올해 거시경제 목표치는 물가 2.5% 이내 안정, 금리 8%대의 한자릿수 안정, 경상수지 흑자 120억달러 달성, 실업률 4%대 안정 등이다. 외견상 지난 3월까지 정부의 목표치는 경상수지 흑자를 제외하고는 그런 대로 달성되는 모습을 보였다. 소비자물가는 전년말 대비 올 3월까지 0.8% 올랐고 지난해 3월에 비해서는 1.6% 상승하는 데 그쳤다. 금리 역시 한자릿수로 안정됐다. 그러나 경상수지 흑자는 3월까지 7억4,600만달러 흑자에 그쳤다. 당초 정부가 목표로 했던 15억달러 흑자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같은 경제상황에 대해 정부는 기본적으로 낙관론을 펴고 있다. 그러나 여러 연구기관에서는 우리 경제의 앞날에 대해 「경계신호」를 보내고 있다. 한마디로 「과열」이라는 것이다. 1·4분기 중 실질성장률이 10%를 상회하는 등 지나치게 빠른 경제성장이 물가·금리 불안과 경상수지흑자 축소로 이어지면서 국내경제의 대내외 균형이 붕괴돼 내년 이후 우리 경제가 하드랜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올해 우리나라의 실질 경제성장률(GDP)을 당초 6.5%로 전망했으나 이를 8%로 수정했다. LG경제연구원이나 금융연구원 역시 7%대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을 전망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10% 성장을 점치는 전문가도 있다. 홍순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국내 소비지출과 투자 모두 과열기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실질경제성장률 상향조정을 반드시 청신호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높은 경제성장률은 당연히 물가불안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2.5%를 물가목표로 제시하고 있지만 연구기관들은 3~4%대를 예상하고 있다. 경상수지 역시 120억달러 흑자규모는 무리라고 보고 있다. 경제가 과열되면서 수출보다 수입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대부분 100억달러 미만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가 과열기미를 보이고 물가가 불안하면 금리는 당연히 뛴다. 특히 지나치게 풍부한 시중유동성을 총선이 끝나면 한국은행이 환수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총선 후 금리상승을 예측하는 시장참가자들이 대부분인 실정이다다. 그러나 선거를 앞둔 정부는 이같은 경고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올해 1·4분기의 높은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1·4분기의 성장률이 낮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통계적 현상으로서 2·4분기 이후부터는 안정될 것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재정경제부는 당초 제시했던 올해 거시지표 목표치를 더욱 높은 수준으로 수정했다. 이헌재(李憲宰) 재경부 장관은 물가상승률을 당초 3% 이내에서 2.5% 이내로 안정시키겠다고 말했다. 금리도 당초 한자릿수에서 8%대 초중반으로 안정시키겠다고 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선거를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하고 있다. 물가안정은 전국민들이 좋아할 주제이다. 특히 물가가 안정되면 금리가 안정되고 금리안정은 주식시장 활황으로 이어진다. 시장에서는 장관의 이같은 언급을 시장, 특히 주식시장 투자자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하고 있다. ◇구조조정 의지의 퇴색=금융부실 재발 등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시급한데도 선거를 의식해 정부의 개혁의지가 후퇴하고 있다. 李장관은 2차 금융구조조정에 대해 『정부가 나서지도 않을 것이고 시장 자율적으로도 올해 안으로는 이뤄지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李장관은 『정부가 나서지는 않겠지만 금융구조조정이 시장자율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은근히」 금융기관들을 압박했다. 이 압박이 선거를 앞두고 『자율적으로도 올해 안에는 없을 것』이라고 변했다. 선거를 앞두고 금융기관, 특히 은행원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포석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시장이나 시장참가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李장관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현재 은행권은 초비상이다. 『어느 은행과 어느 은행이 합병하고 여기에 어느 은행이 붙는다』는 루머가 기정사실로 유포되고 있다. 은행원들은 이 와중에 자신들의 은행이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자신은 어떻게 생존해야 할지에 온통 관심이 집중돼 있다. 정부는 현재 주요 대형은행의 최대주주이다. 금융기관 자율과 정부주도라는 것이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대목이다. ◇노사불안, 과소비=경제가 급속히 활황국면으로 접어들고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노사불안 등 악재가 돌출하고 있다. 대우자동차 해외매각에 반대하는 자동차 4사 노조가 동맹파업에 들어갔고 부산 부두노조의 파업도 발생했다. 한국노총 산하 전국 직장의료보험 노조도 의료보험 통합에 반발, 부분파업을 벌이기로 했다. 노조뿐 아니다. 의약분업실행안에 반발하는 의료계의 집단휴진사태도 빚어졌다. 선거를 앞두고 정부의 구조조정 노력 이완과 경기과열을 조장하는 듯한 태도가 사회 전반에도 영향을 미쳐 「제 목소리 키우기」가 확산되고 있다. 과소비 풍조도 재연되고 있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올들어 소비재 품목의 수입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지난 1월 초부터 3월20일까지 오디오 등 음향기기 수입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6%, 컬러TV와 VCR 179%, 스키용품 233%, 의류 123%, 골프채 50%, 보석 등 귀금속제품 59%, 화장품은 49%나 늘었다. ◇전망=멕시코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멕시코는 구제금융 3년차인 지난 1985년 총선과 지방선거를 맞아 각종 개혁과제를 늦추는 바람에 경상수지 적자 반전, 물가급등, 고금리, 생산위축 등 국가경제 위기가 재발한 경험이 있다. 선거를 의식한 정부의 경제정책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사태」로 진전시킨 것이다. 홍춘욱 굿모닝증권 수석연구원은 『멕시코의 경우 석유의존도가 지나치게 컸고 외환보유액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부양을 위해 과다하게 재정을 지출한 점이 위기의 원인』이라며 『우리도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고 무역수지 흑자규모가 축소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요 연구기관들 역시 『정부가 현재의 저금리 정책기조를 지속할 경우 경기과열이 현실화되면서 내년 이후 경제가 급속히 하락할 수 있다』며 선제적 경기진정대책을 주문하고 있다. 안의식기자 ESAHN@SED.CO.KR 입력시간 2000/04/06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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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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