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경기 침체로 유가 급락… "지금은 시스템 위기"

약달러 리스크 회피차원 유가 상승서 분위기 바뀌어<br>생산자물가 27년來 최고 "美경제 다방면서 타격"<br>뚜렷한 해결책 없어 더 불안… "수십년만에 최악상황"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미국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 진입 가능성을 시인하자 국제유가가 1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급락한 것은 미국 경기침체의 장기화→세계 경제 둔화→석유수요 감소라는 등식에 투자자들이 초점을 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국제유가를 배럴당 150달러 가까이 밀어붙일 때 달러 하락에 대한 리스크 회피수단으로 원유가격을 밀어올렸던 것과 분위기가 딴판이다. 버냉키 의장의 발언이 전해진 15일(현지시간) 미국 달러화는 급락했지만 투자자들은 달러 하락보다는 수요 감소에 무게를 뒀다. 이날 국제유가의 흐름을 새로운 추세로 보긴 아직 어렵지만 그동안 달러 하락을 이유로 기름 시장에 몰려갔던 투자 분위기가 서서히 미국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수요 둔화 쪽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버냉키 의장의 발언은 미국 경제가 ‘시스템의 위기’에 빠져 있음을 인정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상원 금융위원회에서 ▦신용경색 지속 ▦에너지 가격 상승 ▦주택가격 하락 ▦실업률 상승 ▦소비 위축 등이 향후 미국 경제성장에 인플레이션과 경기하강의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바클레이스 글로벌인베스터즈의 러스 쾨스테리히 투자전략책임자는 “미국 경제가 다방면(multiple sides)에서 타격을 받고 있어 향후 경기전망이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버냉키의 경기하강 위험 발언에서 촉발된 원유수요 감소 우려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내년도 원유 수요 증가율 전망치 하향 소식과 함께 국제유가의 하락세를 부채질했다. OPEC은 6월 석유시장 보고서에서 올해 전세계 원유수요 증가세가 수요감소 및 비회원국의 공급증가로 지난 2002년 이후 처음으로 줄어든 1.20%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 있다는 증거는 경제지표에 그대로 반영돼 나타나고 있다. 15일 발표된 6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년동기 대비 9.2% 상승해 1981년 이후 27년 만에 가장 빠른 상승세를 기록했다. PPI 상승은 에너지 및 식품가격 상승의 영향이 크지만 이는 고스란히 소비자물가에 반영돼 경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부동산 가격급락→소비심리 급랭→기업실적 둔화→경기침체라는 악순환이 반복되며 경기 불황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더 큰 문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에서 시작된 금융시장의 유동성 위기가 잦아들기는커녕 오히려 확산될 조짐을 보이며 당장 꺼야 할 발등의 불이 됐다는 것이다. 양대 국책 모기지업체인 패니매와 프레디맥이 구제금융 지원 발표에도 불구, 주가가 급락하며 금융시장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현재 월가는 투자은행 및 기업들이 연쇄 부도로 내몰릴지 모른다는 공포감으로 살얼음판이다. 특히 대표적인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는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으로 불린다. 이 회사는 올 들어 주가가 80% 이상 폭락하는 등 ‘제2의 베어스턴스’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며 매각설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미 행정부와 FRB가 앞으로 시장을 안정시킬 만한 뚜렷한 해결책을 내놓기 어렵다는 점도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FRB는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사이에서 금리를 내릴 수도 올릴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으며 부시 행정부의 경기부양책은 세금환급이나 실업수당 지급 등 본격적인 경기부양에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이날 백악관에서 가진 긴급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마술 지팡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미국 정부가 처한 상황을 지적했다. 현재 미국 경제가 처한 위기는 지난 수십년간 지속된 신뢰의 위기이자 시스템 위기로 치유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누리엘 루비니 교수(뉴욕대 경제학과)는 “지금의 신용위기는 시스템 위기”라며 “좀처럼 끝을 확인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경제는 치유하기 어려운 악순환에 빠져 경기침체가 신용위기를 증폭시키고 이는 다시 침체의 골을 깊게 한다”며 “금융시장은 대공항 이후, 경제는 수십년 만에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관련기사



김정곤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