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3월22일] 랜드 런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1889년 3월22일 정오. 기병대 장교가 권총을 하늘로 들어올렸다. ‘탕!’ 소리와 함께 전력질주. 말이나 마차를 타고 곳곳에 마련된 출발장소를 뛰쳐나간 사람은 5만명. 광활한 대지가 흔들렸다. 무엇이 사람들을 내달리게 했을까. 두 가지다. 땅과 선착순. 먼저 깃발 꽂는 자에게 원하는 땅을 내준다니 죽으라 달릴 수밖에. 일인당 160에이커, 즉 19만5,870평씩 불하된 토지의 가격은 공짜나 다름없었다. 미개척지 불하정책의 근거는 1862년 링컨 대통령이 만든 홈스테드법(Homestead Act). 늘어나는 이민에게 일자리를 주고 동북부 산업자본의 공산품 수요기반을 조성하며 서부 개척을 촉진한다는 다목적 카드였다. 홈스테드법의 첫 실행 대상은 오클라호마 일대 188만여 에이커. 1만2,000여 가구가 땅을 얻었다. 마지기당 쌀 생산량을 200㎏(2004년 한국 평균은 449㎏)으로 잡아도 가구당 1,360섬(19만5,840㎏ㆍ80㎏들이 2,448가마)의 소출을 낼 있는 농지를 얻은 꼴이다. 백인 정착민이 천석꾼 이상의 꿈을 안고 기름진 땅을 향해 달린 ‘랜드 런(Land Run)’의 이면에는 터전을 빼앗기고 학살당한 인디언의 비극이 깔려 있다.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진 랜드 런으로 불하된 땅은 남한 면적의 33배 규모인 약 2억7,000만에이커. 200만여명이 혜택을 받았다. 전세계를 호령하는 미국 기업농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처음부터 대단위로 시작한 농장은 합병을 거치며 덩치를 불렸다. 문제는 처음부터 질주에 맛을 들린 습성과 식욕이다. 랜드 런은 살아 있다.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미국 농업의 ‘월드 런’ ‘코리아 런’이 대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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