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유성룡의 오해와 진실' 밝히다

설득과 통합의 리더 유성룡<br>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 펴냄<br>10만 양병설 반대한 우유부단한 인물 이라고?<br>양반에 병역의무·신분 타파 실시등<br>파격적 정책으로 사대부 공격 받아<br>전란 극복위해 계급 특권마저 버린<br>통합과 조정의 리더 진면목 보여줘



"옛날 당태종이 이필에 대해서 '이 사람의 정신은 몸보다 크다'라고 말했는데 나 또한 서애에 대해 그렇게 말한다. 대개 그는 젊었을 때부터 이미 우뚝 거인의 뜻이 있었다." 개혁 군주 정조는 그가 펴낸 '홍재전서(弘齋全書)'에서 서애(西涯) 유성룡(柳成龍ㆍ1542~1607)을 극찬했다. "저 헐뜯는 사람들을 그가 처한 시대에 처하게 하고 그가 맡았던 일을 하게 한다면 그런 무리 백명이 있어도 어찌 감히 그가 했던 일의 만분의 일이라도 감당했겠는가." 이율곡의 십만양병론을 비판해 조선을 왜란의 위기에 빠지게 한 인물 정도로 유성룡을 알고 있다면 큰 오산이다. 선조 40년(1607) 음력 5월6일 유성룡이 세상을 뜨자 왕은 3일장을 치르게 했지만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하루를 더 애도했다. 남대문 밖 상인들은 4일간이나 철시하면서 "선생이 없었던들 우리가 지금 어떻게 살아 남았겠는가"라며 통곡했다. 도대체 그의 사람됨과 그릇의 크기가 어떠했기에 백성들은 물론 후대 임금까지도 그를 절절히 칭송하는 것일까. '조선왕 독살사건''송시열과 그의 나라''조선 최대 갑부 역관' 등 대중적인 역사서로 폭 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덕일은 유성룡을 설득과 통합의 힘을 지닌 리더로 평가하고 있다. 흔히들 유성룡은 우유부단한 인물로 알려졌지만 저자는 그를 부드러움과 단호함을 겸비한 조선 최고의 재상으로 묘사한다. '설득과 통합의 리더 유성룡'은 임진왜란과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영의정과 도체찰사를 겸임하며 풍전등화의 국가 위기 상황을 헤쳐나가고 국가 발전에 필요한 탁월한 정책들을 제시한 그의 모습을 재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선조수정실록' 등 각종 사료와 유물, 사진자료를 바탕으로 유성룡을 둘러싼 각종 오해와 의문을 밝혀낸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모습에 깜짝 놀라게 된다. 유성룡의 최대 실책으로 꼽히는 '10만 양병론 반대'는 임진왜란 후 당쟁의 소용돌이에서 벌어진 오해라는 저자의 주장이다. 그는 10만 양병론 반대설은 "왜란 이후 반대 당파 인물들에 대한 악의적 창작을 일삼은 김장생의 창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정짓는다. 김장생은 조선 중기 대표적인 예(禮)학자. 그의 제자 송시열은 '율곡연보'에 이이의 10만 양병설을 실어 논쟁의 빌미를 제공했다. 저자는 오히려 유성룡이 전란 직전 '내 고장은 내가 지키자'는 취지의 '진관법'을 제안하는 등 국방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분석한다. 이뿐 아니다. 백성들의 세금 부담을 덜어준 조선 후기 최대의 사건 '대동법'은 임란 때 유성룡이 작미법이란 이름으로 이미 시행한 제도였다. 고종 때 호포법 실시 이후에야 양반들이 비로소 병역 의무를 지게 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유성룡은 이미 임란 때 속오군을 만들어 양반들에게도 병역 의무를 지웠다. 하급 무관이었던 권율과 이순신을 천거한 인물도 바로 유성룡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가 종군(從軍)을 조건으로 노비 신세를 벗게 해주는 신분 타파책을 실시했다는 점. 하지만 이 같은 파격적인 위기 타계책은 반대파의 공격 단초가 되기도 했다. 북인은 결사 항전을 주장한 유성룡에게 강화론자라는 누명을 씌웠다. 또한 조선 왕조의 공적을 알리기 위해 명나라에 파견한 사신단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탄핵했다. 하지만 저자는 유성룡이 공격 받은 이유는 정작 따로 있다고 말한다. 속오군ㆍ작미법처럼 사대부들의 기득권을 흔든 제도를 시행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조선의 양반 사대부들은 나라가 망할지언정 서얼이나 천인을 등용해서는 안되고 나라의 군사가 모자라도 자기 집 노비를 내 줄 수 없다는 극단적 이기주의에 빠져 있었다. 저자 특유의 흡입력 강한 문체가 이 책에서도 역시 빛을 발하고 있다. 전란 극복을 위해 자신이 속한 계급의 신분적 특권까지 모두 타파하려 했던 통합과 조정의 리더로서 유성룡의 삶이 대권을 두고 정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요즘 우리 정가에 적지 않은 교훈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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