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가까이 오지 마, 그렇다고 누구나 가버리면 안돼."
러시아쯤으로 보이는 나라의 어느 도시 외곽. 이곳 한 귀퉁이에 있는 호텔 비너스에서 누군가가 "비너스의 뒷 모습을 보여주세요"라고 속삭인다면 그 사람은 이 호텔에 장기 숙박을 하고 싶은 사람이다. 숙박자들 사이의 불문율은 서로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 누군가가 가까이 오는 것, 혹은 멀리 가버리는 것. 겉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이곳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마치, 이 세상에서 모래알처럼 흩어져 살아 가고 있는 우리 모두처럼.
10일 개봉하는 '호텔 비너스'는 일본 자본으로, 일본 감독(다카하타 히테타)이 만든 영화지만 100% 한국어 대사가 사용된 이색적인 영화다. 평소 한국어로 연기를 하고 싶다고 얘기했던 가수 출신 배우 구사나기 쓰요시(한국명 초난강)가 스타급 여배우 나카타니 미키와 한국 배우 조은지, 이준기 등과 함께 연기한다.
비너스라는 화려한 이름과 달리 이 호텔에 사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세상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숨어 들어왔다. 주인은 항상 여장을 하고 있는 게이 '비너스', 그리고 어려서 어머니로부터 버림을 받은 뒤 '킬러'가 되겠다며 총을 가지고 다니는 '보이'(이준기), 꽃가게를 운영하는 게 꿈인 꽃가게 점원 '소다'(조은지), 자기 혐오 속에서 살고 있는 전직 의사 '닥터'(가가와 데루우키)와 매일같이 그를 때리는 부인 '와이프'(나카타니 미키). 주인공 초난(구사나기 쓰요시)은 과거의 아픈 기억 때문에 '죽지도 살아 있지도 않은' 상태로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이 호텔에 공사장에서 일하는 남자 '가이'가 들어오면서 '오래된 혼란' 속에 하루하루를 살던 이들의 잔잔한 삶에 파장이 일어난다. 올해 모스크바 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강동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