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수요 고려안해 시장 외면… 설비투자펀드 '애물단지'로

■ 정부 '매칭펀드'는 '실패한 펀드'<br>금융위기땐 자금쓸 기업 없고 돈 풀리자 일반대출 더 선호<br>"시장과 동떨어진 지원 대신 민간 투자여건부터 조성을"



지난해 금융위기 직후 정부가 야심 차게 준비했던 민관 매칭펀드가 무용지물이 된 것은 시장을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안일한 준비 탓이 크다. 국책은행의 종잣돈을 마중물 삼아 총 40조원의 설비투자를 이끌어내겠다고 했지만 기업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금융환경이 나빴던 지난해에는 정책 설비투자자금을 갖다 쓸 기업이 없었고 상대적으로 상황이 나아진 올해에는 지분까지 가져가는 펀드 참여 대신 풍부해진 시장유동성을 발판으로 일반대출을 더 선호하는 실정이다. 정부의 의지(?)에 못이긴 국책은행들이 집행에 나섰지만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한 투자를 기업들이 반기지 않다 보니 기존 정책자금 집행방식인 직접 대출로 상당 부분 선회했다. 은행과 시장의 외면 속에 정부의 매칭펀드가 갈수록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는 셈이다. ◇무용지물된 매칭펀드=지난해 7월, 정부의 계획은 야심 찼다. 정부가 산업은행(현 정책금융공사 포함)과 기업은행을 통해 2조원의 펀드자금을 마련하면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5조원을 투자하고 이를 발판으로 은행들이 5조원의 대출자금을 별도로 조성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정부가 단계적으로 기관투자가 추가참여 및 회수자금의 재투자를 이끌어내 20조원의 펀드 및 연계대출을 활용하고 기업의 매칭투자까지 합쳐 총 40조원의 '국부' 설비투자펀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원대한 구상은 초기부터 삐걱댔다. 정부가 가장 믿었던 국민연금이 수익률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체적인 설비투자 자금집행에 나선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정책을 발표한 후 한달 뒤 금융위원회가 국책은행을 동원해 우선 2조원의 설비투자펀드 및 대출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2조원 자금조성 이후 추가로 들어온 돈은 '0원'이었다. 금융위의 '우선적인' 자금조성은 결국 마지막이 된 것이다. 조성된 2조원 중 8개월 동안 집행된 금액은 준비한 자금의 절반 수준인 1조700억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중소기업 분 6,000억원 중 절반은 대출로 쓰였다. 기업들의 매칭투자는 유아무야 없던 일이 돼 버렸다. ◇"묻지마 지원 대신 투자여건 조성 필요"=설비투자 매칭펀드가 사실상 실패한 것은 정부의 정책의지가 시장의 수요와 동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당초 정부는 기존의 정책자금 지원에서 한발 더 나아가 펀드투자로 접근하겠다는 구상이었지만 펀드 구성의 가장 큰 요건인 민간자본의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 상황이 바닥을 친 후 V자형 상승을 그리는 상황에서 수익률 보장이 안되는 정책펀드에 들어올 자금이 있을 리 만무했다. 정부 스스로가 지난해 상반기 확장적 재정ㆍ통화정책을 바탕으로 강력한 경기부양 과 금융시장 상승세를 이끌어 냈는데 낮은 수익률의 자본 참여를 바랐던 것 자체가 논리적으로 모순된 상황이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금융위기 때는 아예 납작 엎드려 있었고 상황이 나아진 후에는 더 나은 수익률을 찾아가는 상황에서 민간자금을 공적 영역에서 굴린다는 구상 자체가 무리였다"고 지적했다. 더군다나 올해 경기가 좋아져 기업들의 정책자금 수요가 부쩍 늘어났음에도 매칭펀드를 외면하는 것은 결국 기업들의 '현장감'을 정부가 읽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진흥공단에 따르면 2월 말 기준 전국에서 접수된 정책자금 신청금액만 2조262억원으로 올해 전체 예산(3조1,355억원)의 64% 수준에 이르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당초 기업과 금융기관이 리스크를 나누겠다는 게 매칭펀드의 취지였는데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았다"며 "당초 구상과는 (매칭펀드가) 다르게 운용되고 있지만 최근 기업들의 설비투자율이 높아지는 등 상황이 좋아지고 있어 별도의 공적펀드 조성 필요성이 크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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