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새로운 시대?

나는 21살이 되던 날 아침, 『오늘부터 나는 어른이다』라고 말하며 일어났다. 그러나 정작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새 밀레니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거품 장세에 걸맞지 않게 국제 증시가 2000년 첫 날 하락세를 보이기는 했지만 곧바로 손실 대부분을 보전할 만큼 올라섰다. 앨런 그린스펀 미 연준리(FRB) 의장은 2000년에도 늘 구사하던 식의 발언을 계속했다. 세상은 쉬지 않는 발걸음으로 새로운 세기를 맞이했다. 달리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왜 새 시대에 변화를 기대하는가. 20세기의 첫 3분의 1이 지난 1933년 세계 경제는 불황의 늪에 빠졌다.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했고, 베니토 무솔리니와 조셉 스탈린이 간악해진 시기다. 그때 우리 모두는 더 나은 30년을 맞이하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세계전쟁이라는 끔찍한 대가를 치르고서야 우리는 그 바램을 이뤘다. 노련한 경제학자들은 세계 GDP성장률과 인플레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지난 세기 마지막 한 해의 성적표가 적어도 A- 는 된다고 알고 있다. 미국에게는 중심가의 번영을 지속시키는 것이 최고의 목표다. 이를 위해선 성장을 신중하게 둔화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 어느정도의 회복 기미가 보인다. 그러나 이런 회복세가 지난해 35%나 치솟은 증시 상승세를 얼마나 쫓아갔겠는가. 증시 상승은 기회주의적인 외국인들의 주식 매입에서 기인했다. 97년 상반기 타이에 자금을 쏟아붓다가 하반기들어 아시아가 붕괴하자 자금을 모조리 빼낸, 바로 그 핫머니 말이다. 한국은 지난해 약10%의 성장률에 육박, 놀랍도록 강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 기업의 총수들이 정말로 필요한 교훈을 얻었을까. 90년대 중반에 그들은 시장 점유율을 높인다는 덧없는 시도를 위해 막대한 단기자금을 차입했다. 지금 또다시 위성발사 능력을 발전시킨다는 한국의 웅대한 계획은 불안한 징조로 비춰질 수도 있다. 유럽과 남미지역의 예측 전문가들은 2000년에 유럽의 실질GDP가 미국 수준에 바짝 다가설 것이라고 기대한다. 독일이나 프랑스, 이탈리아가 아일랜드나 네덜란드, 핀란드, 스페인, 영국의 전망치와 비슷한 수준으로 다가선다면 유로화는 달러화 대비 약세에서 벗어나 한층 강해질 것이다. 이들 3개국이 다른 국가들의 성장세를 따라간다면 유럽중앙은행의 역할도 크게 덜어질 것이다. 「한가지 사이즈가 모두에게 들어맞아야 한다」는 식의 정책 구속은 회원국들이 비슷한 경제 여건에 놓이게 될 때 더 잘 작동하게 마련이다. 「거대 합병이 과연 좋은 것인가」 경제학자들이 종종 듣는 근심어린 질문이다. 든든한 임기 계약을 맺는 최고위 간부들 입장에서는 분명 좋은 일이다. 투자은행들에게도 마찬가지다. 합병은 중복되는 인력 수요를 줄인다는 점에서 정당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수천개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도 주로 평균 직장보다 더 많은 봉급을 받는 일자리들이 사라진다. 거시적으로 이는 퇴출된 사람들의 새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정부의 통화 및 금융정책의 중요성은 더욱 강화된다. 미시적으로, 비효율적인 일자리 제거를 억지로 늦추는 것은 실리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비효율적인 두 은행간 합병을 금지한다 해도 그들의 영향력과 고용창출력은 새로 등장한 라이벌과의 경쟁으로 결국 줄어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합병이 인력을 감축하고 소비자들에게 값싸고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게 한다고 결론짓는 것은 잘못이다. 이는 아직 객관적으로 검증되지도 않았다. 미국 경제는 사상 최장기 호황으로 기네스 북에 올랐다. 보험통계상 나이가 더해 갈수록 내가 죽을 가능성은 높아진다. 비즈니스 사이클이 이같은 평균화의 법칙을 피해갈 수 있을까. 우리는 예전의 비즈니스 사이클이 무용지물이 되 버린 새로운 혼합 자본주의의 시대로 들어선 것이 아니다. 새로운 세기도 얼마간의 경기침체와 투기과열과 금융 공황을 겪을 것이다. 다음번 경기 침체는 중앙은행의 통화관리 강화에서 야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번영에 대한 가장 큰 위협-이는 부득이하게 세계 경제에 대한 위협도 된다-은 주식시장의 붕괴에서 올 것이다. 호황장세의 거품이 오래 지속된 만큼 거품이 터지는데서 오는 패닉 현상은 심각할 것이다. 이로 인해 투자가들의 자산이 사라지기도 하지만,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일자리와 생산, 실질 소득에 미치는 악영향이다. 이같은 우려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공통된 것이다. 훗날 우리가 20세기로부터 물려받은 경제적 유산을 돌이켜 봤을 때 금새 붕괴해버리는 「카드로 만든 집」만 남는다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린스펀 의장이나 그의 후계자가 금리를 낮추고 금융공황을 막을 능력을 갖췄다고 믿지만 그것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니다. 새로운 시대에도 경제학자들이 걱정할 일은 여전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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