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두가지색 '피아니스트' 잇단 개봉

2001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과 남녀 주연배우상을 석권한 영화. 올해 이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차지한 영화. 두 영화 모두 제목은 '피아니스트'다. 감독은 각각 미하엘 하네케와 로만 폴란스키감독. 전자는 20일 다른 하나는 내년 1월1일 잇달아 개봉한다. 피아노를 매개체로 하고 있지만 주제와 내용은 전혀 딴판이다. 미하엘 하네케감독의 '피아니스트'(원제 La Pianiste, 개봉 20일, 수입 배급 M&N 엔터테인먼트)가 인텔리한 중년 음대 교수인 여주인공의 성적 일탈을 음악과 함께 충격적일만큼 사실적으로 그렸다면,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원제 The Pianist, 개봉 1월1일, 수입 감자, 배급 씨네월드)는 전쟁의 한중심에 선 음악가가 생존을 위해 싸워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 존엄성의 한계에 질문을 던진다. 각 영화의 일반시사회장에서 많은 사람들은 영화를 보고나가면서 "오랜만에 영화다운 영화를 봤다"는 반응이다. 우선 '퍼니 게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하엘 하네케감독의 '피아니스트'는 '당혹스럽다. 변태스럽다''정말 사실적이다. 놀라울 만큼 지적이다'등의 여러가지 반응을 받는다. 클래식 선율과 함께 애절한 사랑, 충격적 성묘사가 공존하며 충돌하는 영화다. 40대의 독신녀 에리카(이자벨 위페르)는 빈 음악학교의 저명한 교수이자 사랑받는 피아니스트다. 그녀 앞에 강렬한 턱 선과 눈부신 금발의 공대생 클레메(브누아 마지멜)가 나타난다. 클레메의 완벽하고 독창적인 슈베르트 연주를 듣는 순간, 그녀는 흔들린다. 그리고 선생님과 제자간의 불온한 사랑이 시작된다. 이들의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악명 높은 작가(엘프리드 옐리네크)와 그에 맞먹는 불친절한 감독, 그라고 가장 냉정한 표정을 가진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만들어 낸 한 완벽한 피아니스트의 충격적인 사생활에 대한 몰래 카메라처럼 변모해간다. 클레메를 만나기전 에리카 모습을 보면 외롭고 도착적인 '성수업'을 보여준다. 그녀는 중년의 나이에 여전히 엄마와 같은 침대를 쓰며 사소한 일로 머리채를 잡고 싸운다. 서로 의심하고 따귀를 때리고 또 바로 사과하고 부둥켜 운다. 관객에게 경악과 함께 한편의 코미디를 선사한다. 그의 정상적이지 못한 성욕은 피아노 레슨후 보여준다. 마치 남들이 극장이나 체육관을 가듯 홀로 섹스샵 한켠에 있는 좁은 비디오방에 들어가 다른 남자가 사정을 하고 버린 휴지의 냄새를 맡고, 자동차 극장의 젊은 연인들의 정사를 지켜본다. 결국 자신의 성기에 면도날을 대기까지 한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학교 화장실 장면. 에리카와 클레메가 첫 관계를 맺는 장소다. 격렬하게 키스한다. 이제 연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클레메. 그러나 에리카는 냉정하게 말한다. "날 사랑한다면 내가 시키는대로 해" 그리고 "날 강간해 줘" 밖으로는 우아하고 완벽하기 그지 없는 여류 피아니스트. 외롭고 쓸쓸한 성의식은 그녀의 얼음 같은 표정 때문에 더 보기 안쓰럽고 또한 잔혹하다. 2003년 새해벽두를 장식할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는 유대계 폴란드인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의 회고록에 토대를 둔 작품. 감독 또한 같은 유대계 폴란드인으로 나치의 가스실에서 어머니를 잃었다. 스필만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유대인 강제 거주지역)에서 공포와 광기에 맞서 생존을 위한 외로운 투쟁을 벌였다. 수많은 죽음의 위험 속에서 스필만은 자신의 예술적 재능으로 가까스로 살아나고 이 극적인 경험은 낙관적인 희망으로 물든다. 전운이 자욱하게 감돌고 있던 1939년 폴란드의 바르샤바. 천재 피아니스트 스필만은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던 도중 방송국이 폭격을 당하자 연주를 마치지 못한 채 허겁지겁 피난길에 오른다. 순식간에 폴란드를 장악한 나치는 대대적으로 유대인 탄압에 나선다. 스필만도가족과 함께 수용소행 열차에 실려가던 중 그를 알아본 호송원들의 도움을 얻어 극적으로 죽음의 열차에서 탈출한다. 수용소행은 면했지만 감시의 눈길을 피해 하루하루 연명하는 것도 쉽지 않다. 전황이 악화되면서 그를 몰래 돕던 손길도 끊어지고 폭격으로 은신처마저 파괴된다. 폐허가 된 건물 다락방에 숨어지내던 스필만은 먹을 것을 찾아 주방을 뒤지다가 독일군 장교에게 발각된다. 한눈에 도망자임을 알아본 그는 스필만이 신분을 묻는 질문에 피아니스트라고 대답하자 연주를 명령한다. 다락방에서도 쉬지 않고 가상의 건반을 두들겨대던 스필만이었지만 허기에 지친 몸과 추위에 곱은 손가락은 쉽게 말을 들을 것 같지 않다. 오랜 침묵이 흐른 뒤 스필만은 마지막 연주가 될지도 모르는 그 순간 영혼을 손끝에 실어 연주를 시작한다. 전쟁과 평화, 아군과 적군. 이 모든 걸 떠나 인간의 위대한 영혼과 승리를 연주하는 대목으로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공포를 넘어 귀기마저 서린 스필만을 연기한 애드리언 브로디('빵과 장미'출연)의 연기는 담담하면서도 역사와 광기를 보여주는데 아쉬움이 없었다. 여기에 '쉰들러 리스트'로 오스카상을 거머쥔 프로덕션 디자이너 알란 스타스키가 재현한 60년전 동유럽과 잿빛 바르샤바의 풍경등은 전쟁의 참혹함을 더해줬다. 박연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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