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트리플약세' 심화선진국 경기침체로 살얼음판을 걷던 국내 실물경기가 장기침체의 늪으로 빠져드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침체 속도가 워낙 빨라 이제는 제동을 걸기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산업생산, 설비투자, 내수심리 등 성장을 견인하는 3대 축이 모두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테러사건의 영향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는데도 결과는 이렇게 나쁠 수가 없다.
경기회복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게 뻔한 트리플 악재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올 세계경제성장률을 지난 92년 2.2%이후 10년만의 최저치인 2.6%로 수정 전망한 데서 나타나듯이 세계경제상황은 여전히 밝은 빛이 보이지 않고 내부 환경은 더욱 나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 경제 성장 엔진이 멈췄다
지난 7월 산업활동 지표에도 모두 최악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었다.
산업생산은 98년이후 최악인 마이너스 5.9%였으며, 제조업가동률도 29개월만에 최저치인 71%를 기록했다.
그러나 8월 지표는 이보다 더욱 심각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감소세가 다소 둔화되긴 했으나 산업생산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4.7%가 줄어들었다. 지난 6월이후 3개월동안 감소세를 멈추지 않았다.
여기에 설비투자의 감소세는 정말 우려할만한 수준까지 급락했다.
기업들이 제품을 만들기 위해 설비를 얼마나 사들였는가를 나타내는 설비투자는 지난해 11월이후 10개월째 마이너스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더욱이 이번에는 무려 19%가 감소했다. 지난 98년 11월 27.3%가 줄어든 이후 33개월만에 최악의 성적이다.
달리 해석하면 기업들이 그만큼 미래의 경제상황을 어렵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돈이 벌릴 조짐이 보이기만하면 일단 투자해 놓고 보는 게 기업들의 속성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투자는 커녕 투하자본마저 회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 장기 침체 신호
특히 생산능력이 급격하게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나 장기 침체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8월 생산능력은 지난해 같은기간보다 2.7% 증가에 그쳐 국내 경제가 외환위기로 침체로 들어서기 직전인 지난 98년 12월의 1.1%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생산능력은 기업들이 갖추고 있는 생산설비를 이용하여 생산 가능한 생산량을 의미한다.
장기간 지속된 설비투자가 생산능력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진 셈이다. 생산능력 감소는 대외여건이 호전됐을 경우에도 기회를 극대화할 수 있는 힘이 부친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경제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3ㆍ4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각오해야 할 것이면 지난 98년의 경우처럼 당분간은 침체의 터널을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 힘의 결집이 필요한 때
정부는 경기가 이처럼 벼랑을 향하고 있는데도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기존에 나왔던 정책을 재탕삼탕하고 있어 시장에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
이에 정부가 불확실성을 핑계로 지나치게 위축된 게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자신감이 없다보니 정책도 우왕좌왕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치권은 때이른 선거정국을 펼쳐놓고 정쟁에만 몰두해 있다. 가라앉고 있는 국가경제와 민생은 뒷전이다.
전문가들은 여야와 정부 가릴 것 없이 경제회생에만 매달려야 난국을 헤쳐갈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김종섭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와 관련해 "너무 무리한 경기부양책은 나중에 큰 후유증을 유발할 수 있지만, 선진국의 경기대응책 범위내에서는 한 발 앞선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동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