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오는 20일(음력 11월19일)은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노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장렬하게 순국한 지 407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맞아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의 참화에서 나라와 겨레를 구한 이순신의 비상한 리더십과 거룩한 희생정신을 되새겨보게 된다. 아울러 이순신이 고귀한 한 목숨을 바쳐 나라를 위해 싸울 때 당시 국정의 최고책임자였던 선조(宣祖)는 자신의 본분을 다했던가 그의 리더십을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5,000년 오랜 우리 민족사에서 나라를 멸망의 위기로 빠뜨린 임금도 많았는데 선조도 그 가운데 한사람이었다. 예나 이제나 국가 최고지도자의 자질이 부족하고 리더십이 없으면 국정은 표류하게 마련이다. 조선왕조는 27명의 국왕 가운데 선조의 재위 기간만큼 다사다난했던 적도 없었다. 그의 재위 중에 동서당쟁이 시작됐고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現정권 무능 드러내며 표류 선조가 재위 41년 내내 부국강병과 국리민복은 도외시한 채 나라를 제대로 이끌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그의 비정상적인 즉위 과정에서 비롯됐다. 선조는 명종이 후사 없이 죽는 바람에 조선왕조 사상 최초로 방계승통에 의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는 중종의 서손 가운데 한명이었다. 후궁 창빈 안씨가 낳은 중종의 아홉째 아들 덕흥군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니 정상적 상황이었다면 국왕 후보에도 끼지 못할 서열이었다. 그런 까닭에 선조는 재위 내내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에 시달렸으며 이는 결국 신하들과의 불화, 또 자신의 아들 광해군과의 불화로도 나타났고 사후에는 독살설로 시달리게 됐던 것이다. 마치 부정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나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자들처럼 정통성에 대한 콤플렉스가 컸던 만큼 선조의 왕권 안보에 대한 집착은 병적이었다. 임진왜란이 터지자 백성을 버리고 피난가면서도 선조는 어제는 동인, 오늘은 서인의 손을 들어주는 식으로 당쟁을 자신의 왕권 안보에 악용했다. 또한 장수들을 의심하고 시기해 의병장 김덕령을 죽이고 이순신과 곽재우를 죽이려고 했으니 이는 이적행위나 마찬가지였다. 선조가 오늘날 대통령 자리에 앉았다면 단 1년도 못 버티고 쫓겨났을 것이다. 성격이 모질고 시기심이 강했던 선조는 결코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지 않았다. 기축옥사(정여립 사건)에 대해서도 뒷날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내가 흉악한 성혼과 악독한 정철에게 속아서 어진 신하들을 죽인 것이다.” 1,000명에 이르는 인재를 참살한 기축옥사는 자신은 손에 피 한방울 묻히지 않고 서인의 손을 빌려 동인을 숙청한 사건이었고 그 이면에도 자신의 왕권을 더욱 확고히 하려는 음흉한 저의가 숨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직전 일본의 사정을 살피고 돌아온 뒤 전쟁이 있을 것 같다는 동인 황윤길의 보고를 무시하고 서인인 김성일의 보고를 수용함으로써 무비유환의 재앙을 당했던 것이다. 전쟁의 위험이 조금만 있어도 대비를 하는 것이 국가 안보의 기본적 상식이거늘 당시 선조와 여당인 동인들은 왜적이 쳐들어오면 자신들은 무사할 줄 알았을까. 왕조시대의 국왕이 후궁을 두고 자식을 많이 낳은 경우는 성군으로 불리는 세종대왕도 예외가 아니지만 8명의 부인에게서 14남11녀를 둔 선조도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서울을 몰래 버리고 피난 중 백성으로부터 이런 욕설까지 들었던 것이다. “상감은 그동안 민생은 뒷전이고 수많은 후궁의 배 불리기에만 열중했고 후궁의 오라비 김공량만 사랑하는 것을 제일 계책으로 삼다가 오늘 이런 일을 당했으니 어찌 김공량을 시켜 왜적을 토벌하지 않소.” 심지어는 돌팔매질을 하는 백성도 있었으니 그는 이미 국왕도 아니고 그런 정부는 정부도 아니었다. 선조는 재위 중 10여차례에 걸쳐 ‘임금 노릇 못해먹겠다’며 마음에도 없는 양위극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는 물론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한 쇼였다. '선조 국정 소홀' 본받아선 안돼 오늘의 사정이 선조 때와는 다르지만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다. 임진왜란으로 국가가 멸망의 위기를 당했으면서도 유비무환의 교훈을 무시해 병자호란을 당했고 결국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으며 왕조시대가 끝난 뒤에도 6ㆍ25와 같은 참담한 국난을 당했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3년이 지났건만 국정은 부국강병ㆍ국리민복은커녕 여전히 좌표를 잃고 표류하고 있다. 정치ㆍ경제ㆍ안보ㆍ외교 전분야에서 무능과 혼란상이 누적되고 최근에는 친북 좌파의 준동으로 자유ㆍ민주의 국가 정체성까지 흔들리고 있으니 나라의 앞날이 더욱 걱정스러운 것이다. 그래서 이 정부는 ‘아무것도 하는 것 없는 건달 정부’니 남은 임기 2년 동안 ‘그저 사고나 안 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역사에서 유비무환의 교훈을 되새기라는 것이다. 탁월한 리더십으로 국난 극복에 앞장섰던 이순신,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라!”는 이순신 정신을 본받지는 못할망정 극단적인 편 가르기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망국의 위기를 초래했던 선조, 백성으로부터 멸시당하면서 “너나 잘하세요!” 비슷한 소리를 듣던 선조와 같은 엽기적 국왕의 본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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