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오월의 빛

시리도록 연푸른 5월이 우리 곁에 다시 찾아왔다. 눈부시게 찬란한 이 계절의 아름다움 저 편에는 화창한 봄볕 한 켠에 그늘진 응달보다 더 선연한 핏빛 오월. 그 날의 기억이 자리잡고 있다. 시인의 예찬처럼 우리 오감에 느껴지는 5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와 모란의 계절일 뿐만 아니라 또 젓나무의 뾰족한 바늘잎마저 연한 살결처럼 느껴지는 신록의 달이다. 어느 수필가는 “방금 찬물로 세수한 스물 한 살의 청신한 얼굴과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투명한 비취가락지”로 이 청순하고 싱싱하고 생동감 넘치는 5월을 노래했다. 애수 어린 감상이 아련한 향기로 피어나던 이 계절이 우리에게 암울한 핏빛 기억과 함께 뒤엉키게 된 것은 아마도 80년 5월부터 일게다. 그 날 이후 우리 시대의 양심은 맑고 순결한 신록의 아름다움에서 외롭고 처절한 죽음의 기억을 떠올려야 했고 거리로 뛰쳐나가야 했다. 비겁자이기를 거부하고 적어도 시대의 어둠을 헤쳐 가고자 했던 산 자들에게 5월은 꼭 무언가를 해야하는 속죄와 의무의 계절이었다. 세월의 문턱을 훌쩍 넘어 오월은 그 살벌한 죽음의 이미지를 뒤로하고 신록의 싱그러운 생명력으로 부활하고 있다. 젊은 넋들이 뿌린 오월의 붉은 피는 거름되어 인권과 평화의 뿌리를 내리게 했고 자유와 민주, 그리고 정의를 갈망하는 세계인의 가슴속에 `민주주의`라는 탐스러운 열매를 선사하고 있다. 이제 오월은 우리 아이들의 눈망울에 평화의 노래를 들려줘야 한다. 핏빛 오월의 기억을 떨쳐버리고 연푸른 인권의 선율이 그 아이들의 가슴에 메아리치게 해야 한다. 작열하는 오월의 태양이 아닌 포근하고 청초한 오월 신록을 호흡하며 맘껏 뛰놀게 해야 한다. 어느새 스물 넷의 든든한 청년 민주주의로 성장한 광주의 오월 정신은 인권과 평화의 빛을 발해야 한다. 거친 호흡으로 불의의 시대에 항거하고 나태한 자신을 추스르며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고자 했던 우리 젊은 날의 초상(肖像)이 인권과 평화의 맑고 밝은 빛으로 선명하게 승화할 수 있도록 오월 속에 살아 숨쉬게 해야 한다. 우리의 5월 신록이 이토록 시리도록 연푸른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전갑길(국회의원ㆍ민주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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