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4월 22일] '통미봉남' 대처법

최근 우리 외교가에 ‘통미봉남(通美封南)’이라는 유령이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통미봉남이란 말은 북핵 문제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용어지만 요즘 핵 문제를 다룬 기사에서는 심심찮게 등장하는 4자성어다. 남한을 배제하고 미국하고만 협상하겠다는 북한의 핵 협상 전략을 일컫는 용어다. 쉽게 말하면 미국하고만 ‘통’하고 우리는 ‘왕따’시키겠다는 뜻. 이 말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1차 핵 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월 북한이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 선언을 하면서 핵 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고 북한은 핵 개발을 무기로 미국과 막후 협상을 벌였다. 진통 끝에 북한과 미국은 이듬해 영변 플루토늄 원자로 폐쇄를 전제로 미국이 중유 및 경수로를 제공하기로 약속한 제네바합의(1994년)를 체결했다. 우리 정부는 이 협상 과정에서 뒷방 마님으로 전락한 채 북한의 경수로 건설 비용만을 떠맡았다. 이후 이 같은 북한의 핵 협상 전략을 두고 통미봉남이라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전후 배경에서 볼 수 있듯 다분히 북한의 태도에 대한 경계심이 담겨져 있는 용어다. 2002년 북한이 핵 프로그램 계획을 공공연히 드러내면서 불거진 2차 핵 위기 연장선상에 있는 지금은 어떤가. 겉으로 봐서는 북한의 전략이 과거 통미봉남과 크게 다를 바 없다. 6자 회담이라는 자리가 있지만 북한은 여전히 미국하고만 통하려고 고집한다. ‘북한하는 것 봐서 경제협력 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상호주의 원칙에 북한은 ‘우린 잃을게 없다’는 태도로 남측을 왕따시키려 한다. 얼마 전 싱가포르 북미 잠점합의 등 요즘 돌아가는 북핵 협상을 보면 1차 핵 위기 때처럼 결국 우리만 통미봉남의 희생양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으려면 철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 남북 문제는 일반적인 국가 외교와는 다른 특수성을 따져야 한다. 이런 특수성을 고려한 해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해법 가운데 적어도 ‘조급증’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어서는 안 된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말했듯 인내심을 가지고 끈기 있게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또한 지레 겁먹고 북한이 요구하는 대로 비위를 무조건 맞춰가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우리 생활 속에서도 알 수 있듯 왕따에서 벗어나려면 스스로 힘과 배짱을 기르고 자신감을 가지며 의연하게 대처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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