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계급사회'등 우려도
■ 인간게놈지도 완성 안팎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유전자수가 다른 영장류는 물론 하등생물과도 그다지 차이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는 등 1차 인간 게놈지도 완성은 그릇된 고정관념을 뒤집고 새로운 유전학적 지식을 안겨주었다.
이번 연구는 오랫동안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유전이냐, 환경이냐'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도 제공, 게놈연구가 의학ㆍ제약산업 뿐 아니라 심리ㆍ교육학 등 다방면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될 전망이다.
한편에선 사회ㆍ제도적 안정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게놈연구가 당초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전개돼 유전정보가 인간의 만사를 좌우하는 유전자 계급사회가 도래할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셀레라 게노믹스사의 크레이그 벤터 사장은 11일 "인간과 원숭이의 유전자중 인간만이 보유한 독창적인 유전자 숫자는 단지 300개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는 원숭이에서 인간으로의 '질적 진화'의 신화를 믿었던 대다수 사람들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것으로 자연을 지배해온 인간이 유전학상으로는 그렇게 월등한 종(種)이 아니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번 연구결과 인간 유전자수는 당초 예상치인 10만개에 훨씬 못 미치는 3만개 수준으로 초파리의 유전자수 1만3,000여개의 두배 정도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연구에서는 또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들이 집중돼 있는 이른바 '킬러염색체'들이 발견됐다. 연구진은 23쌍의 인간 염색체 가운데 3쌍이 유전적 질병과 깊이 연관돼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1번 염색체에 들어있는 유전자들은 알츠하이머병과 전립선암, 6번 염색체의 유전자들은 지능과 관련돼 있으며 특히 성염색체인 X염색체는 근육위축증을 비롯한 많은 질병과 관련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들 질환에 대한 새로운 치료법도 조만간 개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범죄자나 정신질환자 등은 날 때부터 지닌 유전자에 의해 불가피하게 그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일부 사회생물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유전자와 질병의 상관관계는 약 절반 정도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미 텍사스대 에릭 네슬러 박사 연구팀은 "알코올, 아편, 코카인 등에 대한 개개인의 중독 위험중 유전적인 요인은 약 40~60%"라고 밝혔다. 이들 연구팀은 이번 연구로 유전적 질환을 극복할 수 있는 심리학적ㆍ교육학적 연구가 뒤따를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게놈연구가 빠르게 성과를 내오고 있는 반면 제도적인 뒷받침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부 기업이나 보험사들이 개인의 유전정보를 활용, 채용이나 보험가입 등에 제한을 가하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미국내 24개주만이 유전정보를 근거로 고용을 제한해서는 안된다는 법안을 시행중이어서 유전자사회의 도래에 따른 법적 제도적 정비도 시급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김호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