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자본시장 새패러다임을 찾아서] 국내시장 이대론 안된다

국내시장 선진화의 길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금융시장의 패러다임이 급속히 바뀌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금융의 증권화」 현상. IMF 극복은 한마디로 관치금융, 부실대출로 만신창이가 된 한국 금융 시스템에 효율적이고 시장 중심의 자본시장을 이식시키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정부도 올해 자본시장을 대대적으로 수술, 금융 구조조정을 완결짓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낙후된 채권시장, 불투명한 증권·투신산업 등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IMF 이후 개방화·국제화가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우물 안 개구리식 제도와 경영관행에 젖어 있는 국내 자본시장의 현주소와 문제점·과제를 짚어본다. 上- 국내 자본시장 이대로는 안된다. 「채권이 발행만 됐지 유통은 잘 되지 않는 나라」「회삿돈과 고객돈의 구분이 모호한 한국 금융기관」「소액주주가 주권행사를 하기 어려운 나라」 외국인이 바라보는 한국 자본시장의 현주소다. 미국 얼라이언스 캐피털 투신사 관계자는 『한국의 채권발행 규모는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번째로 크지만 국제시장에서 거래가 잘 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채권시장은 발행시장만 있지 우리가 통상 시장이라고 일컫는 유통시장이 없다는 얘기다. 이유는 자명하다. 채권이 매입 당시의 장부가로 평가되기 때문에 한번 발행채권을 사고 나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인 매매를 하지 않는다. 만기까지 장롱 속에 묻어두니 시장이 제 기능을 하기가 힘들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기업평가 시스템이 정착되기 힘들다. 정부의 시장개입이나 몇몇 기관투자가간의 담합에 의해 채권가격이 결정된다. 정부가 채권시장 수요기반을 확충,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을 만들려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은행에서 대출받을 때는 여신심사부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금리가 결정된다. 반면 자본시장은 「수많은」 투자자의 다양한 의견이 「시장가격」을 통해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객관화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모든 경제주체들이 참가할 수 있는 투명하고 공정한 자본시장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다행히 IMF 이후 저금리 정책으로 주식시장이 급팽창하고 국채시장 활성화 등으로 채권거래 규모가 97년의 225조원에서 98년 675조원, 99년 1,485조원으로 급성장하는 등 자본시장이 양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질적 성장은 아직 요원한 실정이다. 당장 올 7월 투신권의 채권시가평가제 전면시행을 앞두고 자본시장은 또한번의 홍역이 우려되고 있다. 투신권의 숨겨진 부실채권이 또다시 수면 위로 부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증권시장 제도 측면에서도 개선점이 많다. 선진시장은 이미 기존 증권거래소의 특권을 포기하고 여타 거래소의 종목 동시상장을 허용하고 있고 세계시장이 하나의 네트워크하는 추세에 맞춰 하루 24시간 주식거래를 실시하고 있다. 채권 대차거래제도도 시급히 정비돼야 할 것 중 하나다. 대차거래는 기관이 유가증권의 미래가격 변동을 예측, 증권을 빌렸다가 나중에 되팔아 자본차익을 챙기는 것으로 선진시장에서 보편화돼 있는 금융기법 중 하나다. 하지만 관련세제 등 제도가 갖추어져 있지 않고 업계의 무관심으로 인해 사실상 대차시장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고도의 금융기법으로 무장한 외국 금융기관이 대차시장을 싹쓸이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21세기 자본시장의 키워드는 증권화다. 은행·보험·증권간의 업무영역이 허물어지면서 금융의 중심축이 은행에서 증권·투신으로 이동하고 있다. 자본시장이 발전할수록 기업들은 은행차입이 아니라 자본조달 비용이 낮은 주식·채권 등 직접금융의 비중을 확대한다. 금융기관 하면 은행을 연상하던 시절이 막을 내리고 역동적인 자본시장을 배경으로 한 증권·투신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국제적 기준에 비춰 한국 증권·투신산업의 경쟁력은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데 이견을 보이는 이가 없다. 증권사는 수익구조를 위탁수수료에 절대 의존하는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고 투신사는 경영비전은 커녕 자체 부실로 생존이 불투명하다. 증권사는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은행·보험과의 제휴합병은 물론 유가증권 발행·인수·유통, 기업 M&A 등으로 수익원을 다각화해 투자은행으로 변신해야 한다. 그러나 투자은행이 되기 위해서는 대규모 자본력과 우수한 금융기법을 전제로 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기관이 투자은행화를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 투자은행이 가능한 금융기관은 극히 소수 대형은행과 증권사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투신업계도 펀드운용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장기적이고 신뢰받는 펀드상품을 내놓지 않을 경우 일본의 전례처럼 외국 금융기관에 송두리째 잠식당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병관기자 COMEON@SED.CO.KR입력시간 2000/03/28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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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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