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8월6일] <1467> 코린트 운하

1893년 8월6일, 코린트 운하(Corinth Canal)가 뚫렸다. 코린트 운하는 총길이 6,343m로 웬만한 내륙수로보다 짧고 폭이 좁아 1만톤 이상은 다닐 수도 없었지만 뱃길 320㎞를 단축시켰다. 공사비 500만달러에 기간 12년4개월. 공기가 수에즈 운하(10년)보다도 길었던 것은 돌산을 깎아야 하는 지형과 자금부족 때문이다. 수에즈 운하를 건설했던 프랑스 회사가 코린트뿐 아니라 파나마 운하에도 손을 대 결국 둘 다 포기한 상태에서 그리스 국왕 게오르그 1세는 운하에 모든 것을 걸었다. 독립(1832년) 이후 왕당파와 공화파의 갈등 속에 두번째 국왕으로 모셔온 덴마크 출신이라는 한계를 넘으려 오랜 염원이었던 코린트 운하에 매달려 끝내 성공시켰다. 운하 건설이 처음 시도된 시기는 기원전 7세기. 공사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리스인들은 배를 산으로 올렸다. 평균 경사 6도인 산길에다 폭 3.5~6m에 이르는 돌을 깔고 수레를 이용해 배를 이쪽 바다에서 저쪽 바다로 넘겼다. 디올코스(Diolkos)라고 불린 인공돌길은 바퀴이탈 방지를 위한 홈이 새겨진 채 900년 이상 사용돼 현대 철로의 먼 조상으로도 꼽힌다. 시저도 구상에 그쳤던 운하공사를 네로 황제는 강행했다. 이민족의 침입으로 공사는 중단됐지만 네로가 동원한 유대인 노예 6,000명은 사도 바울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 운하 대신 유럽의 기독교화라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그리스는 오늘날 경제성을 상실한 이 운하를 애지중지한다. 암벽붕괴와 그을음을 막기 위해 평균 시속도 1~5노트로 묶었다. 구상에서 공사까지 2,500년이 걸린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인다. 수십조원이 들어갈 4대강 사업을 빈대떡 뒤집듯 해치우려는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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