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0월17일] 재벌 수녀


자고 나면 새로운 업체가 끼어들었다. 1822년 쾰른에서만 64개 업체가 건강음료 쟁탈전을 펼쳤다. 가짜와 모조품도 판쳤다. 최종 승자는 마리아 클레멘티네 마르틴. 상표권 차별화를 시도한 수녀 사업가다. 사업 동기는 수도원의 몰락. 근대화 과정에서 수도원ㆍ수녀원이 해체되거나 특권이 없어져 밥벌이에 나서야 했다. 마르틴 수녀는 품질에 자신이 있었다. 17세에 들어온 수녀원에서 50세에 이르기까지 배운 게 약제과정과 간호였기 때문이다. 워털루 전투에서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는 희생적인 간호로 수많은 목숨을 살려내 프로이센 국왕으로부터 종신연금까지 타낸 유명인이라는 점도 사업 밑천이었다. 기대와 달리 초반에는 고전했다. 모방품 탓이다. 궁리 끝에 마르틴 수녀는 빌헬름 3세에게 청원을 넣었다. 프로이센 왕실의 독수리 문장을 상표로 사용하게 허락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신교도 국왕은 전쟁터에서 희생적인 간호활동을 했던 수녀의 청을 들어줬다. 1831년 10월17일, 왕실 문장이 그의 상표로 등록된 후 판매대금이 밀려들어왔다. 어느 누구도 감히 왕실 문장이 들어간 상표를 도용하려 들지 않았다. 독일에서 상표권 보호법이 마련된 게 1874년. 법 제정보다 33년 앞서 상표권을 보호받는 길을 찾아냈던 셈이다. 마르틴 수녀의 건강음료는 다른 나라에도 퍼졌다. 나폴레옹군이 독일에서 철수하면서 가져간 향수 ‘오드콜로뉴’와 함께 쾰른산 건강음료의 효능이 알려져 있던 마당에 왕실 문장이 들어간 제품은 유럽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마르틴 수녀는 1843년 68세를 일기로 사망하면서 독일 최대의 제약업체를 동료 수녀들에게 남겼다. 왕실 문장이 들어간 마르틴 수녀의 건강음료는 요즘도 독일 가정의 상비품으로 약장을 지키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