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월요초대석/발자취] 70~80년대 온몸으로 독재항거

신념 꺾지않은 '양심적 지식인'한완상 부총리는 70~80년대 온 몸으로 독재에 항거했던 대표적인 '양심적인 지식인'이다. 한 부총리는 이로 인해 해직과 투옥, 망명을 거듭해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 왔지만 결코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신념은 고교 2학년때 '사회전체나 집단이나 역사가 병들었을 때 그것을 고치는 사회의사(社會醫師, social doctor)가 되고 싶다'는 소망에서 출발했다. 부모가 원했던 의대나 법대, 정치학과를 지망하지 않고 사회학과를 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특히 대학3년을 마치고 입대, 부패한 군의 현실을 직접 체험하며 사회의사가 되겠다는 그의 의지는 더욱 굳어졌다. 한 부총리는 대학을 마치고 이 같은 꿈의 실현을 위해 62년 미국으로 유학해 에모리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당시 미국에서는 흑인민권운동이 막 태동하는 시점이었고 반전(反戰)운동을 통해 미국자본주의의 질병을 치료하려는 양심세력, 즉 사회의사들의 노력을 목격할 수 있었다. 70년 모교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로 돌아온 한 부총리는 '대학 자율선언'을 주도하고 당시 서울대 교수중에서는 유일하게 가장 반정부적인 학생집단인 '한국기독학생총연맹(KSCF)'을 지도하는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이런 그는 권력에 의해 76년 학교에서 추방당하기에 이른다. 이후 더욱 왕성한 활동을 하던 중 6번의 연행과 감금, 조사를 받았고 80년 5월에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휘말려 군사재판에 서게 됐다. 그러나 이런 시련은 그의 학문적 성숙함을 더하게 해주었고 70~80년대 우리나라의 역사현실 속에서 구체적인 이를 치료할 처방전을 담은 '민중사회학'을 세상에 내놓게 됐다. 한 부총리는 93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에 입각해 '이인모노인 북송'등 탈 냉전을 위한 정책을 폈으나 오랜 재야생활과 통일부총리 시절 남북화해를 강조해 온 역정 때문에 보수세력의 색깔론 공세를 끊임없이 받았다. 한 부총리는 지난해 펴낸 '다시 한국의 지식인에게'라는 저서에서 '우리의 교육현실이 젊은이들의 창조적인 끼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입시위주의 암기교육'이라고 질타하고 있다. 첫 교육부총리의 자리에 오른 그가 지금 이런 우리 교육을 사회의사로서 어떻게 치료할지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60년 서울대 문리대 사회학과졸 ▦64년 미국 에모리대 대학원 사회학과졸 ▦67년 사회학박사(미국 에모리대) ▦67년 미국 테네시주립공대 조교수 ▦69년 미국 이스트캐롤라이나대 조교수 ▦70∼76년 서울대 사회학과 부교수 ▦76년 해직 ▦79년 기독학생총연맹 이사장 ▦84년 서울대 교수 복직 ▦93년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 ▦94∼98년 한국방송통신대 총장 ▦상지대 총장 ▦2001년 부총리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현)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