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1월 29일] <1607> 1850년의 타협


한반도보다 여섯 배나 넓은 새 영토의 획득과 금광 발견. 1848년 미국이 얻은 횡재다. 멕시코와의 전쟁으로 캘리포니아와 유타ㆍ네바다ㆍ애리조나 등의 거대한 영토를 빼앗고 캘리포니아에서 세계 최대의 금광이 발견된 것. 금을 찾아 서부로 떠나는 골드러시의 흥분은 얼마 안 지나 정치적 위기를 불러왔다. 인구가 갑자기 불어나 주(州) 승격이 확실한 캘리포니아의 성격이 자유주냐 노예주냐를 놓고 남부와 북부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렸다. 크고 부유한 캘리포니아의 향방에 따라 세력균형이 갈릴 판. 남부는 캘리포니아 주민대표회의 결과대로 자유주가 될 경우 집단적인 연방탈퇴도 불사한다며 배수진을 쳤다. 연방법을 개정해 남부와 북부가 각기 대통령을 뽑는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자는 논의도 나왔다. 갈등과 대립 속에서 북부 출신인 상원의원 클레이가 1850년 1월29일 타협안을 내놓았다. 캘리포니아를 자유주로 승인하되 유타와 네바다는 준주로 남기고 도망노예송환법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클레이 타협안은 8개월간의 논란 끝에 의회를 통과했다. 미국은 분열 위기를 넘기고 이 타협안은 '1850년의 대타협(Compromise of 1850)'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약발은 오래 가지 못했다. 타협안의 골자인 도망노예송환법이 북부의 반발과 노예반대론자들의 결집을 야기하고 링컨의 대통령 당선과 남북전쟁으로 이어진 것이다. 전쟁에서 인구도 적고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남부는 제조업이 발달한 북부를 당해낼 수 없었다. 전쟁은 수많은 목숨도 앗아갔다. 양측에서 62만명이 죽고 40만명이 다쳤다. 완전히 해체된 남부의 경제가 북부의 평균 수준을 따라잡는 데 100년 이상의 세월이 걸렸다. 남부가 버티고 버텨 타협안에 집어넣은 악법이 모든 것을 잃게 만든 셈이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