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도 동맹휴학 있었다KBS 역사스페셜
정치적 명분을 내건 동맹휴학과 수업거부, 시험장에서의 컨닝, 수업시간에 대리출석, 대학 주변에 넘쳐나는 술집과 여관들…. 요즘의 대학 얘기가 아니다. 조선시대 최고의 국립대학인 성균관의 풍경이다. 퇴계 이황도, 율곡 이이도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이런 대학생활을 보냈다니. 흥미로운 일이다.
이번주 KBS 1TV 「역사스페셜」을 보면 조선시대 대학생도 요즘 대학생들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는 생각이 들 것같다. 「조선시대 상아탑 성균관 24시」. 7월 1일 오후8시 방송.
조선 개국과 함께 설치된 국립대학 성균관은 요즘의 행정고시 1차에 해당하는 문과 초시에 합격한 전국의 생원과 진사 200여명이 다니던 조선 최고의 엘리트로 구성된 최고 학부였다.
이들 성균관 유생들은 요즘 대학생들 못지않게 활발한 정치활동을 벌였다. 일례로 세조 때 궁내에 내불당을 지으려 하자, 성균관 유생들은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는 한편 상소에 대한 왕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공관」이라는 동맹휴학까지 벌였다. 이밖에도 조선시대에는 총 80여회에 걸쳐 요즘의 수업거부와 동맹휴학에 해당하는 「공관」과 「권당」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왕들은 매번 이들을 극단적으로 처벌하거나 강제하지 않고 관용과 설득으로 대했다. 이 점은 강경대처로 일관하는 요즘과 다소 다르다.
시험장의 컨닝도 요즘 대학과 비슷하다. 유생들은 과거 시험장에서 「수진본」이라는 포켓용 사전 훔쳐보기를 비롯해 담 안쪽에서 모범답안 던져주기, 붓뚜껑, 심지어는 콧구멍 속에 숨기기 등의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컨닝을 시도해 대소 신료들은 이를 막고자 고심했던 기록이 전해진다.
학문탐구에 열의가 높았던 유생들에게도 유흥을 즐길 「해방구」가 있었다. 성균관 주변에서 시작해 오늘날의 명륜동·혜화동·동숭동을 포함한 「반촌(泮村)」이라는 유흥가에는 주막과 여관 등이 많아 학습에 지친 유생들의 해방구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문성진기자HNSJ@SED.CO.KR
입력시간 2000/06/3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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