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한국의 전문변호사] <6편 조세> (3) 고성춘 고성춘법률사무소 변호사

5년간 소송 5만여건 다뤄 조세사건의 '달인'<br>국세청 시절부터 군더더기없는 법리제시로 명성<br>"책저술은 보시" 세금관련 분야 집필 활동도 활발<br>"불법 영세율등 이용한 稅포탈 방지책 마련해야"



고성춘(45ㆍ사시 38회) 변호사는 2003년부터 5년간 서울지방국세청에서 법무2과장을 지낸 경력 빼고는 조세전문 변호사로 내세울 '화려한 경력'은 별로 없다. 국내파인데다 나이에 비해 변호사 경력도 짧다. 하지만 그가 2003년 국세청 개방직 1호로 특채 돼 매년 재임용 형식을 거쳐 5번이나 '연임'한 것 하나만으로 그의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되고 있다. 국세청 '법무과장' 자리는 솔직히 요직은 아니다. 국세행정소송이나 국세심판, 민사소송, 이의신청, 과세전적부심 등의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고 변호사가 채용되기 전까지는 일만 많고 생색내기는 힘든, 그야말로 몸으로 떼우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일만 벌이지 않으면 편히 쉬다 갈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고 변호사 생각은 달랐다. 그는 2003년1월 부임 하자 마자 소송계류 사건과 금지금 업체들의 거래형태를 분석, 금지금 업자나 대기업들이 금지금을 변칙거래하면서 국가로부터 부당하게 부가가치세를 환급 받는 형식으로 세금을 탈루 한 정황을 잡고 공론화에 나섰다. 일을 찾아서 만든 것이다. 이후 2004년 국세청은 금지금 업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기획 세무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177개 업체에 1조6,000억원(2005년말 기준)의 세금부과 처분을 내리는 성과를 냈다. 이와 함께 검찰이 금지금 변칙거래 이용 부가세 탈세사건을 수사하는 직접적인 계기를 만들어 줬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하지만 초기 대응실패로 일부 업체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 무혐의 처분이 내려지거나 대법원 판결로 2006년 5월 이전까지는 금지금 사건에서 연속해 국가 패소 결정이 났다. 그러자 고 변호사는 소송가액이 고액이고 승소가능성이 높은 소송을 추리고, 실력 있는 변호사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해 2006년5월~2007년11월까지 총 45건, 소송가액 3,122억원의 금지금 소송에서 승소판결을 이끌어 내는 성과를 냈다. 고 변호사는 "불법 영세율, 면세 등을 이용한 조세포탈 사건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비상장주식 물납을 이용한 변칙상속 및 증여 등 법의 허점을 노려 탈세를 해 온 고액자산가들에게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 법무과장 5년간 조세사건 5만건 다뤄 고 변호사는 법무과장 5년 동안 5만여건 이상의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다뤘다. "서울에서 생기는 조세분쟁 사건은 모두 들여다 봤을 정도"라고 할 정도다. 이러다 보니 이제는 자료만 훅 읽고 지나도 단박에 감이 올 정도로 '달인'의 경지에 올라섰다. 국세청을 나오기 직전의 일화 한가지. 국세청 징세팀이 국내 대기업을 상대로 천문학적인 세금을 부과할 지 여부를 놓고 무려 6개월간을 고민하던 사건을 고 변호사가 최종 검토하게 됐다. 고 변호사는 불과 몇 시간 만에 "과세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려 돌려보냈다. 난다 긴다 하는 조세전문가인 국세청 직원이 6개월이나 끌던 사건을 고 변호사는 단 몇시간 만에 결론을 내려 버린 것이다. 결국 고 변호사가 제시한 논거로 사건은 종결됐다. 고 변호사는 "법리로 보면 아주 간단한 것을 조세전문가들이 6개월이나 고민했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사건이었다"며 "국세청 예규 등과 같이 징수 편의적인 사고로 접근하면 복잡한 사건도, 법리를 따져보면 간단하게 답이 나온다"고 말했다. 관행보다는 원칙이, 주관보다는 법리가 우선시되는 과세풍토가 절실하다는 게 그때 든 생각이라고 고 변호사는 덧붙였다. 변호사로 전직한 지금에도 그의 실력은 여전하다. 최근에 맡았던 한 사건의 경우 고 변호사의 군더더기 없는 논리제시로 재판부는 첫 공판에서 결심일을 잡아 버렸다. 조세사건은 복잡해 보통 2~3번의 재판이후에나 결심이 잡히지만, 고 변호사 사건은 소송에서 결심까지 채 두달이 걸리지 않은 것이다. 사건이 단순해서라기 보다는 고 변호사가 내놓은 군더더기 없는 법리제시에 재판부가 더 이상의 다툼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한 게 더 컸다. 고 변호사는 "조세사건에서는 사실관계 파악보다 적용법리가 최우선이다. 법리가 오락가락 하면 사건이 복잡해 보이고, 재판도 길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쟁점 법리를 정확히 주장하면 재판부도 쉽게 설득되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모든 세금문제는 법리로 풀어야 한다'는 고 변호사의 지론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말이다. ◇12년만의 사법시험 합격 늦둥이 고 변호사는 1985년 첫 도전에 나섰던 사법시험 1차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18번의 응시 끝에, 1996년 12년만에 사시에 패스했다. 이후 그는 곧바로 세무공무원이 됐다. 12년간 사법시험 공부를 하는 동안 좌절감도 맛 봤지만, 그는 종교의 힘으로 극복했다. 고 변호사는 혈기가 왕성했던 젊은 시절 기에 흠뻑 빠지기도 했고, 사법시험 공부를 위해 찾았던 사찰과 인연을 맺은 이후 전국 오지의 사찰을 돌며 수행에 몰두하기도 했다. 사시합격 1년 전에는 출가까지 결심할 정도로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자, 고 변호사는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이때 얻은 깨달음을 나누고자 그는, <값진 실패, 소중한 발견>(2002년, 청보), <찾지 않아도 있는 것을>(2008년, 청보) 이라는 두권의 책을 냈다. 고 변호사는 "잘 되고 싶은 마음만 앞선 나머지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는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되자 그는 '그동안 잘 되기 위해 애써왔던 노력은 또 하나의 나를 만들기 위한 공허함이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마음을 비우고 나니 자연스럽게 몸에 향기가 나면서 합격의 영광이 주어지더라"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전국 유명 사찰의 '선방'과 스님들을 줄줄 외우고 있다. 선방은 스님들이 참선을 하는 방을 일컫는데 전국적으로 74개 정도가 있다고 한다. 자신의 변호사사무실 간판을 만들어 준 것도 지방의 한 스님이라며 불교와의 인연을 강조했다. 인터뷰 도중에 청하스님의 '자타불이'나 원효스님의 '막속급호' 등의 난해한 문장이 자연스레 흘러나왔지만, 그의 깨달음을 이해하기 쉬운 글로 풀어보면 이랬다.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돈이든 명예든 직급이든 무엇을 얻으려고 헐떡거리면서 다닌 적이 있다. 그러다 '오늘 내가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답이 다 나오더라.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인생의 사명감은 어제보다 한발짝만 더 나가면 되는 거죠." ◇그에게 책 쓰기는 일종의 '보시(布施)' 고 변호사는 2007년 말 국세청을 떠난 이후 2년간 책을 저술하는 데만 전념할 생각이었다. 솔직히 더 오래 남아 있고 싶었지만, 조직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자 미련 없이 떠났다. 그리고는 '마음의 고향'인 지방의 한 사찰의 '선방'을 찾았다. 그러나 선방에 숨어든 지 1년도 안돼 대형 로펌에서 러브콜이 이어졌다. 어떻게 수소문 했는지 지인들이 직접 찾아와 설득하는 바람에 당초 계획보다 1년 정도 일찍 '하산'했다. 그러나 책쓰기에 대한 미련 때문에 올해 초 함께 로펌에서 다시 나와 개인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마지막 탈고에 여념이 없다. 그는 올해 8월 <세금으로 보는 세상이야기>(청보)를 펴냈다. 이 책에는 상속세를 놓고 형제간 다툼이 벌어진 일, 친어머니를 탈세자로 제보한 자식 등 고 변호사가 실제 현장에서 겪었던 사례가 흥미진진하게 소개돼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세금문제로 고통을 겪는 사람이 줄어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조세법을 분야별로 나눈 10권의 책을 쓰기 위해 국세청에서 담당했던 6,500여건의 사건을 비롯해 5만여건의 사례를 분석해 <조세법 상ㆍ하>, <국세기본법>, <상속세 및 증여세법 사례연구>를 펴냈다. 곧이어 세법별 사례연구 시리즈도 출간할 예정이다. 이미 탈고는 마친 상태지만, 비용이 없어 미뤄지고 있다. 고 변호사는 "수임료가 들어 오는 대로 책을 인쇄하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책이 언제 나올 지는 알 수 없다"며 웃었다. 고 변호사의 책은 부인이 1인 대표인 '청보'가 전담하고 있다. 그렇다고 책을 써서 떼 돈을 벌겠다는 욕심은 없다. 오히려 손해가 나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다. 책을 펴 내는데 사비를 들이다 보니, 작년에만 4,000만원 정도 손해를 봤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모든 노하우를 책을 통해 공개한다. '국세기본법'에는 사례별 적용법리는 물론 사건번호까지 자세하게 적어 놓는 친절을 베풀었다. "내가 잘되기 위해 책을 내는 게 아니다. 나의 지식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공유하고 세금문제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는 게 나에게 주어진 또 다른 임무가 아니겠는가." 선문답처럼 바로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 책쓰기는 '보시', 즉 자비의 마음으로 다른 이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베풀어 주는 주기 위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앞으로 소설책도 낼 계획도 갖고 있다. 소설속 주인공의 이름은 '다내돈'. 주인공 '다내돈'이 어려운 환경에서 자수성가하면서 겪게 되는 돈에 대한 환상과 애착, 그리고 돈을 통해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가 주인공이 췌장암에 걸리면서 눈녹듯이 풀려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스토리가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기대를 해도 될 만한 작품이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는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없다"고 의외의 대답을 했다. "인간이다 보니 변호사로서 돈을 벌고 싶은 욕심도 있다. 그러나 내 역할은 마지막 '회항'의 차원에서 책을 쓰는 것이다." 책을 쓰면 누가 이롭게 될까. 그는 "세상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그럼 변호사로 소송은? "당연히 한다. 입에 풀칠은 해야 되니까."
He is…

▲1964년 광주 ▲1983년 광주일고 ▲1987년 고려대 법학과 졸업 ▲1996년 38회 사법시험 합격 ▲2000년 감사원 근무 ▲2003년 서울지방국세청 법무2과장 ▲2008년 법무법인 바른 조세팀장 ▲2009년 고성춘 법률사무소 개업



관련기사



김홍길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